작년 말과 올해 초 경기 지표가 개선되면서 꿈틀거리던 경기 반등론이 ‘우한 쇼크’ 여파로 힘을 잃고 있다. 중국 경제가 비틀거리면서 한국의 소비·생산·수출 전선에도 적신호가 켜졌기 때문이다. 경기순환상 2017년 9월 정점을 찍고 내리막길을 걷고 있는 한국 경제가 역대 최장기 하강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추정된다. 외환위기 때보다 더 긴 ‘침체 터널’에 진입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호전된 선행지수·소비심리에 찬물
3일 통계청에 따르면 앞으로의 경기를 나타내는 경기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지난해 12월 99.6으로 전달보다 0.4포인트 상승했다. 지난해 9월부터 넉 달 연속 오름세를 나타냈다. 현재 경기를 보여주는 경기동행지수 순환변동치도 지난해 9월부터 11월까지 내림세를 보이다가 12월 상승세로 전환했다. 동행·선행지수가 동반 상승한 것은 2017년 1월 후 35개월 만에 처음이다. 국내총생산(GDP)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민간소비 지표도 개선 기미를 보이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심리지수는 104.2로 전월 대비 3.7포인트 상승했다. 2018년 6월(105.6) 후 최고치다.
그러나 ‘우한 복병’이 등장하면서 개선된 경기 지표가 다시 고꾸라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2003년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처럼 민간소비를 중심으로 경기가 급속히 얼어붙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우한 폐렴) 확진자가 방문한 신라면세점·롯데면세점·이마트·AK플라자·CGV 영화관의 일부 매장이 줄줄이 임시 휴업에 들어간 데다 최근 식당과 마트·백화점을 찾는 발길이 줄어들고 있다. 중국의 생산·소비가 위축되면서 대(對)중국 수출이 줄어들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국회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중국 GDP가 1% 감소하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은 0.5% 줄어드는 것으로 추정됐다. 현대경제연구원과 KB증권은 우한 쇼크로 올해 성장률이 0.1~0.2%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전망했다.
경기하강 29개월째 이어지나
소비는 얼어붙었다. 자동차 등 제조업체는 중국산 부품 공급 차질로 감산에 들어가는 등 실물 경제에 충격이 가시화되고 있다. 2017년 9월부터 2년 넘게 하강곡선을 그리던 한국 경제가 외환위기 당시 29개월(1996년 3월~1998년 8월) 하강 기록을 깨고 역대 최장기 하강기에 진입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해 말 한두 달 경기지표가 기저효과 등으로 반짝 좋아졌지만 우한 쇼크로 올 상반기 수출·소비 지표가 주춤할 것”이라며 “상반기에도 경기가 하강 추세를 이어가는 등 ‘L자형 침체’가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물 경제가 타격을 받자 환율시장을 비롯한 금융시장도 흔들리고 있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3원20전 오른(원화가치 하락) 달러당 1195원에 마감했다. 설 연휴 전날(1168원70전)보다 26원30전 올랐다. 우한 사태 추이에 따라 원·달러 환율이 1200원을 돌파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메르스·사스 사태 때도 환율은 요동쳤다. 2015년 5월 20일 첫 번째 메르스 확진자가 나올 당시 환율은 1096원이었지만 넉 달 뒤인 9월 7일 1200원90전으로 104원90전 급등했었다.
구조적 장기침체 가능성
우한 쇼크가 한국 경제를 ‘구조적 장기침체’의 수렁으로 밀어넣는 단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생산가능인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정부는 주 52시간제와 최저임금 인상 등의 반(反)기업적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업들의 투자 의욕은 줄어들고 잠재성장률은 하락하고 있다. 반짝 살아났던 경기 불씨도 우한 쇼크로 꺼지면서 이 같은 장기침체를 앞당길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조영무 LG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구조적 장기침체에서 빠져나오는 길은 민간의 경제 활력을 북돋워주는 것”이라며 “정부는 재정투입에만 의존하지 말고 규제를 완화하는 데 정책 우선 순위를 둬야 한다”고 말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