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문재인 케어’(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대책)의 부작용을 인정하고 건보의 보장성을 축소하는 대책을 내놨다. 지난해 10월 뇌 자기공명영상(MRI) 검사비에 대한 건강보험 지원을 확대한 이후 이용자가 폭증하자 혜택을 줄이기로 한 것이다. 늦게나마 문제를 인식한 것은 다행이지만 이미 건보 재정 악화가 상당 부분 진행돼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라는 지적이 나온다.
23일 보건복지부는 제25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를 열고 MRI 검사 혜택을 줄이는 내용의 건강보험 보장 수준 조정 방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작년 10월 환자가 대부분의 비용을 부담하던 뇌·뇌혈관 MRI 검사비의 본인부담률을 30~60%로 낮췄다. 이로 인해 건보 재정 지출이 연간 1642억원 늘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머리가 조금만 아파도 MRI를 촬영하려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관련 지출액은 2730억~2800억원으로 치솟았다. 문재인 케어로 과잉 의료가 늘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된 것이다. 건보가 적용된 지난해 10월부터 6개월간 MRI 촬영 건수(150만 건)가 그 이전 6개월(73만 건)보다 두 배로 늘었다.
허술한 제도 운영도 문제로 거론된다. 복지부는 작년 10월 이 제도를 시행할 때 “신경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이 없으면 혜택을 주지 않겠다”고 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신경 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본인이 희망하면 뇌 MRI를 찍을 수 있었다.
정부는 이에 MRI 관련 고시에 ‘신경 검사 결과 이상 소견이 있는 경우만 검사비의 40~70%를 지원한다’는 점을 명시하고, 단순 두통·어지럼 증상은 건보 지원을 검사비의 20%로 제한하기로 했다. 이렇게 되면 일반병원 기준 뇌 MRI 검사비가 11만원에서 22만원으로 오른다. 뇌 질환 의심 진단을 받으면 지금처럼 11만원만 부담하면 된다. 정부는 제도 개선으로 연간 400억원 정도 건보 지출을 아낄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MRI 검사비 적정화 방안은 의료계 등의 의견 수렴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정부는 ‘노인외래정액제’ 혜택도 축소를 검토하기로 했다. 이 제도는 65세 이상 노인이 동네 의원을 이용할 때 진료비가 1만5000원 이상이면 30%만 본인이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지난해 1월부터 진료비 1만5000~2만5000원에 대한 본인부담률은 10~20%로 더 낮아졌다. 이후 노인들의 외래 진료가 급증하면서 정부 예상보다 1.6배 많은 건보 지출이 생겼다.
정부가 뒤늦게 문재인 케어 일부를 손보기로 했지만 전반적인 속도 조절 없이는 재정 악화를 막기 어렵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건강보험 재정은 지난해 8년 만에 처음 적자(1788억원)를 기록했다. 올해는 적자 규모가 3조2000억원으로 커질 전망이다. 국회예산정책처 분석에 따르면 현재 20조원인 건보 기금 적립금은 2023년 7000억원으로 감소한 뒤 이듬해 3조1000억원의 누적적자를 낼 것으로 분석됐다. 장성인 연세대 교수는 문재인 케어와 빠른 고령화 속도에 따라 2021년에 건보 기금이 바닥이 나고 2022년에 누적적자가 11조5000억원에 달할 것으로 추정했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