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총리가 국회 본회의 표결에 나선다면

입력 2019-12-18 18:16
수정 2019-12-19 00:14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을 들어서는 정세균 국무총리 후보자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미스터 스마일’로 불리지만 특유의 환한 미소도 보기 힘들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 출신 의원이 총리로 지명되는 게 부적절하다는 비판을 의식한 모습이었다.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정 후보자는 “스스로도 ‘적절하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했다”고 인정했다.

국가 주요 인사의 서열로 따지면 정 후보자는 2위(국회의장)에서 5위(국무총리)로 내려가는 것이다. 국가 인사의 서열을 규정한 법은 따로 없다. 통상 정부의 의전 관행을 통해 서열을 매긴다. 정부의전편람에 따르면 행정·입법·사법 순으로 자리를 배치한다. 서열 1위는 대통령, 2위는 국회의장, 3위는 대법원장, 4위는 헌법재판소장이다. 그 다음이 국무총리다.

현역 의원의 이 같은 ‘다운그레이드(등급 격하)’ 입각 사례는 처음이 아니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 때도 논란이 일었다. 5선 의원인 추 후보자는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지냈다. 여당 대표는 의전 서열에서 국무총리 다음인 6위다. 장관 서열은 정부조직법상 정해진다. 법무부 장관은 기획재정부·교육부·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통일부 다음으로 6위다. 일각에서는 대통령 포함 5부 요인, 여야 대표와 원내대표 등 주요 인사를 포함하면 법무부 장관의 서열이 20위라는 분석도 있다. 서열로만 보면 추 후보자의 순위는 수직 하락한 셈이다. 두 후보자의 선택이 국회의 권위를 해친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자유한국당은 “입법부를 행정부의 시녀로 전락시켰다”고 맹비난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후 현역 의원을 적극 등용했다. 첫 내각 인사 때 현역 의원 출신 장관 비중은 39%에 달했다. 현재도 유은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진영 행정안전부 장관,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이 의원 겸직으로 장관 자리에 있다. 문 대통령의 이 같은 인사 행태가 반헌법적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헌법을 수호해야 할 대통령이 헌법상 삼권분립 원칙에 반하는 인사를 한다는 주장이다. 상대적으로 인사청문회 통과가 쉬운 현역 의원을 ‘가져다 쓴다’는 뒷말도 있다.

정 후보자가 총리로 최종 임명된다면 헌정 사상 첫 국회의장 출신 총리로 기록될 것이다. 국회법상 총리 역시 의원 겸직이 가능하다. 국민은 당장 선거법 개정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 처리를 위한 표결에 총리 후보자가 출석하는 어색한 모습을 볼지 모른다. 입각한 4명의 국회의원 장관들은 지난 13일 혹시 모를 본회의 표결에 참여하기 위해 비상대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