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과의사가 세운 토스…재수 끝에 '인터넷뱅크' 恨 풀었다

입력 2019-12-16 17:31
수정 2019-12-17 00:44
“토스뱅크는 무리해서 몸집을 키울 생각이 없습니다. ‘느린 성장’이 목표입니다.”

토스 창업자인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인터넷전문은행 예비인가 프레젠테이션에서 심사위원에게 강조한 사업 방향이다. 토스뱅크는 출범 2년 후 자산 목표를 3조3000억원으로 잡았다. 카카오뱅크의 27%에 불과한 규모다. 초고속 성장을 목표로 ‘앞만 보고 달리는’ 회사로 유명한 토스의 모습과 정반대 전략을 내걸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자산을 빨리 늘리려면 공격적인 대출 영업과 대규모 증자가 불가피해 안정성 논란이 또 불거질 우려가 있다”며 “카카오와 반대로 가겠다는 구상에 심사위원들이 신뢰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카카오와 반대로 간다”

16일 토스뱅크에 인터넷은행 예비인가를 내준 금융당국의 선택은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제3 인터넷은행 출범은 문재인 정부가 혁신금융의 상징으로 미는 정책이다. 하지만 네이버와 같은 대형 정보통신기술(ICT) 업체는 줄줄이 불참을 선언했다. 핀테크(금융기술) 업체로는 국내 유일한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 비상장 벤처기업) 반열에 오른 토스가 일찌감치 유력 후보로 꼽혀왔다.

지난 5월 예비인가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토스뱅크는 주주 구성을 다양화하고, 금융당국의 컨설팅까지 받은 끝에 인터넷은행 사업권 획득에 성공했다. 토스뱅크는 기존 은행들이 주목하지 않았던 중신용자와 자영업자에 집중하겠다는 구상이다. 토스뱅크가 끌어들일 수 있는 ‘잠재고객’이 탄탄하다는 점도 강조하고 있다. 토스 앱(응용프로그램) 가입자는 1600만 명을 넘었다.

여기에 주요 주주인 중소기업중앙회를 통해 소상공인 특화 상품을 판매하고, 이랜드월드의 패션·유통 소비자도 공략한다는 구상이다. 은행 운영 경험이 풍부한 KEB하나·SC제일은행, 기업금융에 강한 한화투자증권, 중금리 대출을 잘 아는 웰컴저축은행 등도 든든한 우군으로 꼽힌다.

금융권의 ‘을’에서 ‘갑’으로

핀테크 업계는 토스가 보험사, 증권사에 이어 은행 사업권까지 따내면서 사업 확장에 ‘날개를 달았다’고 평가한다. 이른바 ‘디지털 금융지주회사’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토스는 은행들의 관심권 밖에 있는 무명의 스타트업에 불과했다. 이 대표는 서울대 치대를 나와 치과의사로 일하다가 창업에 도전했다.

토스는 2015년 상대방 휴대폰 번호만 알면 공인인증서 없이도 돈을 부칠 수 있는 간편송금 앱으로 출발했다. 송금 기능을 구현하려면 은행이 전산망을 열어줘야 했는데, 이 대표는 은행에서 문전박대당하는 날이 부지기수였다. 하지만 요즘 금융업계에서 토스의 위상은 완전히 달라졌다. 월 1000만 명대 접속자를 기반으로 ‘금융 마케팅 플랫폼’으로 변신하면서 은행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은행 관계자는 “예전에는 우리가 바빠서 이 대표를 안 만났는데, 이젠 이 대표가 바빠서 못 만난다”고 했다. 이 대표는 금융당국과 꾸준히 접촉하면서 각종 ‘그림자 규제’를 풀어나가는 수완도 발휘했다.

토스는 송금 기능에 이어 계좌정보 조회, 신용점수 관리, 투자상품 판매 등으로 영역을 꾸준히 넓혀왔다. 토스의 기업가치는 2조7000억원으로 평가받고 있고, KPMG가 선정한 ‘세계 100대 핀테크 기업’ 목록에도 2년 연속 이름을 올렸다.

인터넷은행 시장 격전 예고

토스뱅크는 초기 자본금 2500억원으로 법인을 설립해 2021년 7월 운영을 시작할 계획이다. 토스뱅크가 순항할 수 있을지에 대해 업계 안팎에서 다양한 전망이 나오고 있다. 국내 간판 핀테크 기업으로서 혁신적인 서비스를 내놓을 것이란 기대와 함께 카카오뱅크 이상의 파괴력을 보이긴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이 엇갈린다.

금융위 관계자는 “토스뱅크는 예대마진보다 다양한 수수료 수입 등을 발굴한다는 계획”이라며 “토스뱅크는 설립 4~5년 내 흑자 전환한다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고 설명했다.

토스뱅크의 등장으로 인터넷은행 시장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1·2호 인터넷전문은행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가 문을 연 2017년 이후 기존 은행들이 모바일뱅킹 편의성을 대폭 강화하는 등 작지 않은 ‘메기 효과’를 불러왔다. 자본 확충에 어려움을 겪다가 숨통이 트인 케이뱅크와 카카오뱅크는 새해부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설 전망이다. 카카오는 지난달 5000억원 규모의 유상증자에 성공했고, 케이뱅크도 KT를 새 최대주주로 맞을 채비를 하고 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