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진국 주식·채권 줄여라…대체투자 늘리고 신흥국시장 주목"

입력 2019-12-10 17:27
수정 2019-12-11 02:37
“내년 글로벌 성장률 둔화는 불가피하고 저금리 환경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수익률 하락을 그냥 받아들이거나 그게 싫다면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투자해야 합니다.”(제레미 로손 애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트 수석이코노미스트)


글로벌 자산운용사 및 자문사들은 내년 저성장·저금리 추세가 더욱 강화돼 투자 환경이 올해보다 더 예측하기 어려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따라 부동산·인프라, 사모 지분·채권 등 대체투자의 중요성이 더욱 커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다만 대체투자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다차원적이고 세분화된 위험 관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블랙록, 에버딘스탠더드인베스트먼트, 윌리스타워스왓슨(WTW) 등 글로벌 투자 전문 기관은 한국경제신문사가 10일 서울 소공동 더플라자호텔에서 연 ‘최고투자책임자(CIO) 라운드테이블’에 참석해 이같이 조언했다. ‘2020년 세계 금융시장 전망 및 자산배분 전략’을 주제로 열린 이날 행사에는 국내 주요 투자 기관 CIO 및 임직원 등 30여 명이 참석했다.


포퓰리즘 득세, ‘금리인상 가능성 낮다’

영국계 자산운용사인 애버딘의 도널드 암스테드 아시아태평양 투자본부장은 “사람이 날씨에 적합한 옷을 입어야 하듯 포트폴리오도 투자 환경에 맞춰야 한다”며 “선진국 국채, 미국 상장 주식 등 ‘전통자산의 옷’을 입고 있는 투자자들은 내년에 몹시 춥게 느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내년 목표 수익률을 달성하려면 선진국 주식 및 채권 의존도를 낮춰야 한다”며 “신흥국 자산에 투자하되 주가 지수를 추종하는 패시브 전략 대신 사모투자 방식 등을 통해 유망 자산을 선별해 투자하는 액티브 전략을 써야 한다”고 했다. 그는 “내년에도 세계 경제는 성장률 하락세가 지속될 것”이라며 “주식과 채권 등 전통자산 수익률은 대체투자 수익률을 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다.

제레미 로손 애버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제 전망이 어두운 것은 지난 20년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역풍을 맞고 있기 때문”이라며 “중국도 예전 위기 때와 달리 정부 정책으로 단기 성장률을 끌어올리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포퓰리즘이 세계적으로 득세하는 가운데 각국 정부는 내년에도 근본적 체질 개선보다는 돈을 풀어 경기 부양에 나설 것”이라며 “호황인 미국도 인플레이션이 목표치(2%)에 미달해 금리 인상 요인이 적다”고 했다.

유니콘 좇다 당나귀에 투자하면 위험

전문가들은 점점 비중이 높아지는 대체투자 포트폴리오의 위험 관리를 강화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영국계 투자자문사 WTW의 분석에 따르면 글로벌 연기금들의 사모대체투자(private markets) 비중이 2006년 15%에서 2017년 25%로 높아진 반면 채권(fixed income)과 주식(equity)은 같은 기간 83%에서 73%로 줄어들었다.

케빈 제프리 WTW 투자이사는 “향후 12개월 이후 경제 및 시장 전망은 다소 비관적”이라며 “자산군을 최대한 다변화하고 새로운 투자처를 발굴하는 액티브 운용으로 기회를 찾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통적인 자산군 분류를 넘어 다차원적으로 자산을 분석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미국계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오이신 크롤리 대체투자부문 아시아태평양 본부장은 “사모 대출과 기업 주식, 부동산, 인프라로 자산을 분배해도 최악의 투자 결과가 나올 수 있다”며 “예컨대 석유회사 지분, 파이프라인 인프라, 석유지대인 미국 휴스턴 오피스빌딩을 갖고 있는 투자자는 석유산업이 침체되면 대규모 손실이 난다”고 설명했다.

자산별로 자금이 몰리는 사이클(주기)도 주의 깊게 살펴봐야 한다고 조언했다. 크롤리 블랙록 본부장은 “벤처캐피털의 과거 투자 실적을 살펴보면 자금이 많이 몰린 시기보다는 그렇지 않았던 시기의 수익률이 더 좋았다”며 “지금처럼 너도 나도 벤처투자를 할 때 휩쓸리면 유니콘이 아니라 당나귀에 투자할 위험이 커진다”고 말했다.

기관투자가들이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때 ‘메가 트렌드의 변화’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왔다. 로손 애버딘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경기 사이클과 무관하게 4차 산업혁명, 저탄소 에너지 투자, 신흥시장의 성장은 장기간 지속될 것이란 점을 투자 때 유념해야 한다”고 했다.

이현일 기자 hiunea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