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11일(현지시간) 미국의 요청으로 북한 미사일 도발과 관련한 공개 회의를 열기로 하면서 이른바 ‘연말 시한’을 앞둔 미·북 간 기싸움이 한층 고조될 전망이다. 지난 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트윗을 통해 “적대 행동을 하면 모든 것을 잃을 것”이라고 북한에 경고한 지 하루 만에 안보리 소집 결정이 내려지면서 미국의 구두(口頭) 경고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180도 달라진 미국의 태도
이번 미국의 안보리 회의 요청은 올해 총 13번이나 반복된 북한의 미사일 발사 도발에 침묵해온 것과는 다른 움직임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단거리 탄도미사일, 초대형 방사포 등 북한이 올 들어 잇따라 감행한 신형 미사일 도발에 대해 “작은 미사일(smaller ones)일 뿐이다. 누구나 시험하는 것들”이라고 넘겼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이 북한의 미사일 시험 발사에 대응하기 위한 안보리 회의 개최를 요구하고 규탄 목소리를 냈지만, 미국은 이에 동참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이 7일 평안북도 철산군 서해위성발사장(동창리)에서 로켓 엔진 시험으로 추정되는 시험을 하는 등 자신들이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정한 연말을 앞두고 도발 수위를 높이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앞서 김영철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은 9일 발표한 담화에서 “트럼프가 우리가 어떠한 행동을 하면 자기는 놀랄 것이라고 했는데 물론 놀랄 것”이라며 “놀라라고 하는 일인데 놀라지 않는다면 우리는 매우 안타까울 것”이라고 비아냥댔다. 북한이 대미 압박을 위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을 발사하는 도발에 나설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미국 본토 타격이 가능한 ICBM이나 SLBM은 미국이 정해 놓은 사실상의 ‘레드 라인(금지선)’이다. 북한이 ICBM 카드를 만지작거리며 외줄 타듯 이 레드 라인을 넘나드는 것 자체가 트럼프 대통령에겐 상당한 부담이다. 대선이 채 1년도 남지 않은 데다 탄핵 정국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북핵 협상에 실패했다’ ‘ICBM을 개발할 시간만 벌어줬다’는 비난 여론에 부딪힐 수 있기 때문이다.
“레드 라인 넘지 마라” 최후 경고
미국이 안보리 회의를 통해 북한에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마지막 레드 라인으로 삼고 있는 ICBM·SLBM 위협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확고한 뜻과 함께 비핵화 협상의 판을 깨지 말라는 최후 통첩성 경고라는 것이다. 국제 공조를 통해 북한이 비핵화 협상 궤도에서 이탈하는 것을 막겠다는 전략적인 의도도 반영됐다는 평가다. 트럼프 대통령이 8일 트윗에서 북한의 비핵화 약속 이행을 촉구하면서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와 중국, 러시아, 일본, 그리고 전 세계가 이 사안(북한 비핵화 문제)에 통일돼 있다”고 밝힌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안보리 차원의 추가 대북 제재 논의가 이뤄질지도 주목된다. 프랑스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북한의 무기 개발을 막기 위해 기존 대북 제재를 강화해야 한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유류 공급 제한과 관광사업 제한 등이 거론된다. 미국이 이 같은 제재 강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당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이와 관련, 미국 대북정책특별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 내정자가 이달 중순 한국을 방문해 북한과의 협상 접점을 찾을 예정이다.
박원곤 한동대 국제지역학과 교수는 “안보리 소집은 연말 협상 시한을 앞두고 미국이 북한에 던지는 최후 경고로 봐야 한다”며 “북한도 추가 제재와 연결될 수 있는 안보리 회의를 심각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