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25조엔(약 271조원) 규모의 초대형 경제대책을 5일 발표할 예정이다. 미·중 무역마찰에 따른 글로벌 경기 둔화에 대응하고 자연재해, 소비세율 인상 등으로 인한 내수 위축을 막기 위한 이례적인 ‘돈 풀기’다. ‘벚꽃을 보는 모임’ 스캔들로 지지율이 급락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가 사실상 ‘2차 아베노믹스’(아베 총리의 경제정책) 카드를 꺼내는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3일 NHK, 요미우리신문 등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연립여당인 자민당 공명당과 25조엔 규모의 경제대책 최종 조율에 들어갔다. 지난 2일 전망(5조엔대)을 크게 웃도는 13조엔(약 141조원)대 추가경정예산을 편성하기로 한 데 이어 대출 확대와 민간 참여 등을 통해 전체 규모를 25조엔대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경제대책에 소요되는 전체 자금을 올해 추경과 2020년도 예산에 일괄 계상해 ‘15개월 예산’이라는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일본 정부의 경제대책에는 올해 15호(파사이) 19호(하기비스) 21호(부알로이) 태풍에 따른 피해를 복구하고, 하천 제방 강화 등 방재를 위한 인프라 투자 등 자연재해 대책이 많다. 또 ‘취업 빙하기’ 세대의 국가공무원 채용 확대와 최저임금 인상으로 경영이 어려워진 중소 사업자 지원 등 저소득·취약계층 지원에도 적잖은 예산을 배정했다.
포스트5G(5세대) 통신 시스템과 반도체 신기술 등 차세대 기술 개발을 지원하고, 초·중학생 1인당 한 대의 컴퓨터, 태블릿 등 정보기술(IT) 단말기를 배정하는 등의 내용도 담겼다.
일본 정부가 재정건전성 확보 요구에 눈을 감은 채 2016년 시행한 경제대책(13조5000억엔)을 웃도는 수준의 재정정책을 펴는 것은 최근 각종 경기지표가 ‘경고음’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3분기 일본의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은 전 분기 대비 0.1%에 그쳤다. 내각부가 발표하는 경기동향지수는 올 1월 96.3에서 9월 91.9로 떨어졌다. 11월 일본 내 신차 판매대수는 전년 동월 대비 12.7% 감소했고, 주요 백화점 매출도 2개월 연속 하락했다. 일본 정부는 이번 경제대책의 목표는 “아베노믹스의 엔진을 재점화하고 디플레이션 탈출과 경제회생으로 가는 길을 확실하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베노믹스 중 재정정책이 제대로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세코 히로시게 참의원 간사장(전 경제산업상)은 최근 “아베노믹스의 (엔저 통화정책에 이은) 두 번째 화살(재정정책)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며 “아베노믹스의 총결산을 위해서라도 과감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유화했다는 논란으로 아베 총리 지지율이 하락한 것도 선심성 정책 마련을 서두른 배경으로 꼽힌다. 벚꽃 스캔들이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이달 들어 아베 총리 지지율은 마이니치신문 조사에서 전월 대비 6%포인트 떨어진 42%, 니혼게이자이신문 조사에선 7%포인트 하락한 50%를 기록했다. 위기를 느낀 닛카이 도시히로 간사장 등 자민당 실력자들이 “지금은 재정건전화라는 브레이크를 걸 때가 아니라 가속페달을 밟을 때”라며 재정지출 확대를 강하게 요구했다.
하지만 연말까지 너무 많은 금액의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무리수’라는 지적이 적지 않다. 재무성 관계자는 “10조엔이 넘는 거액을 연내에 소화하는 것은 무리”라고 볼멘소리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올해 세금 수입이 기업실적 악화 등의 영향으로 예상(일반회계 세입 62조5000억엔)보다 1조~2조엔가량 적게 걷힐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점도 부담이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