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 꽃피운 남관…동·서양 사상의 '파란 융합'

입력 2019-11-24 18:06
수정 2019-11-25 03:22
한국 추상미술의 선각자 남관(1911~1990)이 프랑스 파리 땅을 밟은 건 1955년. 그의 나이 44세였다. 일제강점기 구시대 미술을 걷어내고 새로운 미술을 추구하고자 했던 결기는 세계 미술의 중심지 파리로 가는 계기를 마련했다.

김환기가 이듬해 파리로 건너와 4년간 체류하며 여인, 매화, 항아리 등이 등장하는 반추상화 작품에 매달릴 때 남관은 세계 각지에서 모인 작가들의 아지트인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며 13년간 추상미술에 빠져들었다. 1958년 한국 작가 최초로 당대 파리화단을 이끄는 전위미술 모임인 ‘살롱드 메’전에 초대됐고, 1966년에는 프랑스 ‘망통비엔날레’에서 대상을 차지하며 국제 화단에 이름을 날렸다. 김환기가 파리 생활을 접고 1964년 미국 뉴욕에 입성해 마크 로스코 등 추상표현주의 거장들과 치열하게 경쟁하며 1970년대 자신의 추상화를 완성했다면, 남관은 1960년대 파리에서 추상미술을 활짝 꽃피운 셈이다.

내년 작가 30주기를 앞두고 서울 삼청로 현대화랑에서 오는 30일까지 열리는 기획전 ‘남관, 세상을 넘어 시대를 그리다’는 추상미술에 영혼을 담아낸 남관의 작품 세계를 재조명하는 자리다. 1955년 파리시대 초기 작품부터 고대 상형문자와 한자를 떠올리게 하는 형상, 1980년대 청색과 갈색 작품 등 60여 점이 격동의 시대를 살았던 작가의 예술적 위상을 음미하게 해준다.


극적인 예술적 발자취

남관의 예술적 궤적은 그의 극적인 삶과 한몸이다. 1911년 경북 청송에서 태어나 일본 도쿄 다이헤이요 미술학교를 졸업한 그는 초기엔 서정적 색감과 자유로운 표현의 인물화에 애착을 가졌다. 1952년 도쿄비엔날레를 통해 접한 유럽 앵포르멜(Informel)에 신선한 충격을 받고는 추상미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새로운 추상의 가능성을 발견하려는 열망은 전통 회화의 격식에 서구의 추상적 조형성을 과감히 접목해 한국화의 면모를 완전히 바꿔 놓았다. 1968년 서울로 돌아온 그는 10년 가까이 홍익대 교수로 지내며 동양의 옛 문명에 속하는 소재들을 잘 융화해 한국 추상미술의 독자성을 확보했다.

남관의 추상화는 다른 화가의 작품과 섞어놔도 딱 ‘남관의 것’이라고 짚어낼 수 있을 만큼 독특하다. 미니멀리즘 기법을 활용한 그의 작품들은 인간 내면을 파고들었다. 인간의 희로애락이나 생명의 영원성과 같은 가치를 정제되고 세련된 색채에 담아 마치 상형문자와 같은 형상으로 아울렀다. “그림이란 삶의 축적이자 나의 인생”이라는 작가의 말처럼 그의 개성이 묻어 나온다.

인간 내면 파고든 아름다운 추상

그의 추상화는 상형문자나 기호 같은 형상을 하지만 자세히 뜯어보면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다. 1957년 작 ‘피난민’은 6·25전쟁 당시 목격한 시체나 부상당한 사람들의 일그러진 얼굴에서 인간의 내면을 극적으로 잡아낸 희귀작이다. ‘동양의 제’(1963)를 비롯해 ‘자색에 비친 고적’(1964), ‘동양의 환상’(1966) 등은 고대 유물이나 유적지를 소재로 인간의 마음속에 내재된 꿈과 소망을 수놓았다. 바라보는 대상으로서 유물이나 유적지를 그린다기보다 인간과 역사가 분리되지 않는 정신을 유물을 통해 불러낸 것이다. 프랑스 미술평론가 가스통 딜이 남관을 ‘동양문화의 어느 일부조차 희생시킴 없이, 동서를 융합시킨 독보적인 예술가’라고 평가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68년작 ‘이끼 낀 형태’는 오랜 세월에 그을린 듯한 바위의 표피, 옛 돌담의 얼룩 등을 떠올리게 한다. 번지며 흐르며 서로 침식해가는 이끼빛과 비바람에 삭은 듯한 청색 얼룩의 미묘한 조화는 사람의 얼굴처럼 다가온다.

1970~1980년대 들어서는 푸른색과 갈색 계통을 기조로 사람의 형상을 춤추는 갑골문자처럼 응축해냈다. 그래서인지 서예처럼 군더더기가 없이 간결하다. 말년에 다채로운 색채의 융합을 강조한 ‘삐에로 꿈’ ‘음영’ ‘환영’ 같은 화면들은 잊혀진 세월에 대한 깊은 향수를 반영하면서도 밝은 미래를 지향하는 축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뜨거운 가슴으로 추상을 맞이하는 화가’의 삶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도형태 갤러리 현대 대표는 “남관은 1950~1960년대 전쟁의 상흔으로 인해 어둡고 무기력해진 국내 화단에 새로운 희망과 혼을 불어넣었다”고 평가했다.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