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하 대표 "세포 괴사 막아 희귀질환 치료…임상시험 미국서 먼저 할 것"

입력 2019-12-03 14:43
수정 2019-12-05 15:28

“세포 괴사 메커니즘을 조절해 염증성 질환, 희귀질환 등을 낫게 하는 혁신 신약으로 제약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꿔놓겠습니다.”

창업 2년차인 김순하 미토이뮨테라퓨틱스 대표(58)의 포부다. 우리 몸의 세포가 쓰는 에너지를 만드는 공장인 미토콘드리아는 최근 세계적으로 질병 치료의 새로운 타깃으로 주목받고 있다. 미토콘드리아 기반 신약을 개발하는 제약바이오 기업은 전 세계적으로 15곳 안팎이다. 김 대표는 “유전자와 무관하게 물리적, 화학적인 충격 또는 스트레스 등으로 생기는 세포 괴사를 조절하면 치료제가 없는 각종 질환 치료 길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사이언스 기반의 세계적 바이오 기업으로 키워가겠다”고 말했다.

우연한 발견이 가져다준 기회

LG화학(당시 LG생명과학)에 근무하던 김 대표는 2006년 어느 날 뜻밖의 경험을 했다. 당뇨 치료제로 개발하던 물질인 ‘MIT’를 쭈글쭈글해진 간세포에 한 방울 떨어뜨렸더니 이튿날 간세포가 다시 탱글탱글하게 되살아난 것이었다. “당시 동료 연구원들이 개발 중이던 비만 치료 후보물질은 간독성 부작용이 심각했어요. 혹시나 하는 생각에 MIT로 간세포 실험을 해봤어요. 그런데 놀라운 결과가 나온 거죠. 그때 이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에 인생을 걸어보자고 다짐했습니다.”

때마침 안티에이징 연구 붐이 거세게 일고 있었다. 세포 사멸 유전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낸 존 설스턴, 시드니 브레너, 로버트 호비츠 등이 200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으면서다. 쓸모없거나 죽어야 하는 세포를 자살시켜 개체를 보호하는 원리를 밝혀냈다. 이를 계기로 과학자들은 세포 자연사를 일으키는 효소인 카스파제를 억제하면 세포 자연사를 막아 노화 및 질병 치료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을 가졌다. 관련 논문만 30여만 편이 쏟아졌다. 하지만 카스파제를 억제했더니 오히려 세포가 괴사하는 역효과가 생겼다.

세포 자연사 연구는 자연스럽게 괴사 연구로 옮아갔다. 세포조직이 붕괴하거나 기능이 정지돼 생기는 괴사는 우리 몸에 염증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괴사된 세포가 터지면서 내용물이 바깥으로 흘러나와 세포 주변을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세포 괴사 원리에서 치료법 착안

세계 과학자들이 세포 자연사에서 괴사로 연구 방향을 트는 동안 김 대표는 2006년부터 일찌감치 괴사에서 질병 치료의 해답을 찾는 연구에 집중했다. 괴사 현상 중에서도 면역체계에 따라 일정한 프로세스를 거쳐 세포가 괴사하는 예정 괴사(programmed necrosis)에 대다수 과학자가 주목했다면 김 대표는 예측할 수 없는 물리적, 화학적 충격 때문에 생기는 우발적 괴사(accidental necrosis)에 초점을 맞췄다. “세포끼리 신호를 주고받으며 특정 유전자를 발현시켜 노화됐거나 감염된 세포를 괴사시키는 예정 괴사뿐 아니라 우발적 괴사를 막는 연구를 하는 곳은 우리가 유일합니다. 이 과정에서 세포 괴사로 염증을 일으키는 메커니즘이 미토콘드리아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알아냈어요.”

MIT 물질이 세포를 되살려내는 원리도 밝혀냈다. 멜라토닌처럼 항산화 기능이 있는 MIT는 미토콘드리아 속으로 들어가 활성산소를 낮춘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확인했다. 그는 “저분자 물질인 MIT는 약물전달 기술에 의존하지 않고도 미토콘드리아 속으로 들어가는 특성이 있다”며 “국내외에 물질특허를 냈다”고 설명했다.

미토콘드리아의 대사과정에서 생성되는 활성산소가 과다해지면 세포가 괴사한다. 이 과정에서 각종 질병이 생긴다. 미토콘드리아를 표적으로 하는 항산화제를 개발 중인 곳은 미토이뮨테라퓨틱스뿐만이 아니다. 뉴질랜드 미토큐, 러시아 미토테크 등도 임상이 한창이다. 이들이 미토이뮨테라퓨틱스와 다른 점은 항산화 물질을 미토콘드리아 안으로 전달하는 수단으로 약물전달 기술인 TPP를 활용한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MIT는 미토콘드리아 안으로 직접 들어갈 수 있는 화학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다른 약물에 비해 경쟁력이 있다”고 말했다.

대기업 울타리 벗어나 창업

강원 삼척 태생인 김 대표는 화학에 관심이 많아 연세대 생화학과에 진학했다. 석사과정을 마친 1989년 LG화학에 입사해 의약품 연구를 했다. 하지만 7년 만에 회사를 그만뒀다. 박사학위를 따기 위해서였다. 서울대 의대 대학원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그는 미국 샌디에이고에 있는 기초 생의학연구소인 스크립스연구소에서 박사후과정을 밟았다.

김 대표는 이곳에서 당뇨병 연구와 인연을 맺었다. 당뇨병은 몸에서 에너지로 쓰는 포도당을 정상적으로 이용하지 못할 때 생긴다. 당을 분해하는 인슐린이 췌장에서 분비되지 않으면 1형 당뇨다. 소아당뇨라고도 한다. 김 대표는 1형 당뇨 연구를 맡아 경험을 쌓아갔다. 그러다 2004년 다시 LG화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당시 LG화학에 근무하던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등 지인들의 권유 때문이었다.

9년 만에 재입사한 김 대표는 당뇨병 치료제 개발 업무를 맡았다. 이렇게 해서 그는 창업의 디딤돌이 된 MIT 물질을 만나게 됐다. 그는 이후 줄곧 MIT 연구에만 매달려 지금까지 4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토콘드리아 기반 신약을 직접 개발해보자는 생각에 2018년 8월 창업했다.

“신약 임상은 미국에서 할 것”

괴사 메커니즘을 활용한 신약 개발 경쟁은 벌써 치열하다. 다국적 제약사 GSK는 류머티즘관절염 건선 대장염 등 3종의 치료제에 대한 임상 2상을 진행 중이다. 예정 괴사 메커니즘을 활용한 신약이다. 미토이뮨테라퓨틱스는 우발적 괴사를 통제하는 신약을 개발하고 있다. 김 대표는 “회사를 창업하고 LG화학으로부터 MIT 권리를 넘겨받았다”며 “우발적 괴사 메커니즘을 활용한 신약 후보물질로 세계 최초 임상에 나설 것”이라고 했다.

미토이뮨테라퓨틱스가 보유한 후보물질(파이프라인)은 2종이다. 김 대표는 “현재 개발 중인 신약 후보물질은 세계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 임상을 먼저 할 것”이라고 했다.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로 개발 중인 ‘MIT-001’은 내년 말 미국 식품의약국(FDA)에 임상 2상 승인 신청을 내고 2021년 상반기에 임상을 시작할 계획이다. 세계적으로 환자 수가 600만 명에 이르는 특발성 폐섬유증 가운데 사망률이 높은 급성 환자 치료제로 FDA 허가를 받은 약은 없다. 베링거인겔하임의 ‘오페브’ 등 기존 치료제는 급성 악화 환자에 대한 효능이 확인되지 않았고 설사 등 부작용으로 인해 사용이 제한적이다. 김 대표는 “아직 치료제가 없는 급성 악화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로 개발할 것”이라고 했다.

이식편대숙주병을 적응증으로 하는 MIT-001의 임상 2상도 2021년 하반기로 잡고 있다. 임상 2상은 2년가량 소요될 예정이다. MIT-001은 LG화학에서 이미 임상 1상을 통해 약물의 안전성을 확인했다. 김 대표는 “임상 3상에 들어가기에 앞서 다국적 제약사 등에 기술을 이전하려고 한다”며 “베링거인겔하임 아스트라제네카 존슨앤드존슨 등에서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했다.

간섬유증 황반변성 등을 적응증으로 개발하고 있는 ‘MIT-002’는 동물실험 단계다. 2021년께 FDA에 임상 1상 승인 신청을 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항암제로의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MIT-002와 병용요법으로 쓸 항체 시험을 하고 있다.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는 미토콘드리아의 특성을 활용한 방식이다. 키트루다 등 면역항암제뿐 아니라 CAR-T 치료제에도 적용 가능하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그는 “미토콘드리아를 통해 암세포를 잡은 면역세포가 활성화되도록 하는 방식으로 암 치료 효과를 높일 수 있다”며 “기존 면역항암제와 병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치료제가 될 것”이라고 했다.

“2022년 말 코스닥 상장 추진”

미토이뮨테라퓨틱스 직원은 14명이다. 직원 상당수는 LG화학에서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다. 이 때문에 기업문화는 LG를 빼닮았다. ‘정도경영’을 경영철학으로 삼은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김 대표는 사이언스 기반 회사를 모토로 삼고 있다. 그는 “남들처럼 이미 알려진 다양한 질환 타깃을 좇아 파이프라인을 늘려가지는 않을 것”이라며 “생명 현상의 핵심인 미토콘드리아 연구에 평생을 바치겠다”고 했다. 이어 “가능성이 아닌 사실을 토대로 연구해야 회사가 롱런할 수 있다”며 “사이언스를 토대로 한 바이오 기업이라는 믿음을 심어가겠다”고도 했다.

근무 방식도 유연하다. 육아 등으로 재택근무가 필요한 직원은 자유롭게 집에서 일하도록 하고 있다. 업무에 방해되지 않는 한 직원들이 제약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김 대표의 철학 때문이다. 자칭 ‘자유로운 영혼’인 김 대표 스스로가 간섭하는 것도, 간섭받는 것도 싫어한다. 그는 “사이언스 회사는 사고가 자유로워야 한다”며 “근무 방식 등에 제약을 두면 창의성을 발휘하기 어렵다”고 했다.

미토이뮨테라퓨틱스는 벤처캐피털 등으로부터 올해에만 120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그만큼 투자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다는 의미다. 미국 임상 2상을 위해 내년 말 추가 투자를 받을 예정이다. 300억원이 목표다. 기업공개(IPO)는 임상 2상 일정을 봐가며 정할 계획이다. 김 대표는 “임상 2상 중간 단계 또는 종료 시점에 코스닥 상장을 하려 한다”며 “2022년 말이 될 것”이라고 했다.

박영태 기자 py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