췌장암은 수술이 유일한 완치 수단이다. 수술 여부를 결정하기 위해서는 암 세포가 주변 혈관을 침범했는지 확인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병원 영상의학과, 외과 의사들이 모여 컴퓨터단층촬영(CT) 화면을 판독하고, 수술 여부를 결정한다. 하지만 그동안은 레이저 프로젝터 화질이 떨어져 혈관 침범 여부를 육안으로 판독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였다.
13일 서울 일원동 삼성서울병원에서 만난 정우경 영상의학과 교수는 “암 세포의 혈관 전이를 제대로 판독하지 못해 개복까지 했다가 수술을 포기한 경우도 있다”며 “최근 삼성전자 QLED 8K 사이니지를 도입한 뒤에는 이런 불확실성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8K 디스플레이 기술이 의학과 만났다. 삼성서울병원은 지난 9월부터 국내 병원 최초로 82인치 삼성전자 QLED 8K 사이니지를 의료 영상 판독을 위해 도입했다. 의사들이 콘퍼런스 과정에서 병변을 제대로 진단할 수 있게 되면서 더 신속하게 수술 여부와 방법을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설치 과정에서 시행착오도 거쳤다. 8K 사이니지에는 해상도가 낮은 영상을 최적화해 8K 콘텐츠처럼 즐길 수 있는 업스케일링 기능이 적용돼 있다. 하지만 정확한 판독이 필요한 상황에서 이 기능이 오히려 의료 영상을 왜곡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삼성전자 개발팀이 8K 사이니지에 의료 영상 국제 표준인 ‘다이콤 모드’를 적용한 배경이다.
병원 현장에서는 다양한 변화가 나타났다. 유방암 진단을 위해서는 ‘맘모그래피’라고 부르는 엑스선 촬영을 한다. 정 교수는 “1㎜ 미만의 아주 작은 크기의 석회를 찾아야 하기 때문에 유방암 환자에 대해서는 콘퍼런스를 아예 진행하지 못했다”며 “하지만 8K 사이니지에서는 미세 석회는 물론 유선 조직까지 선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수술 현장도 영상을 통해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정 교수는 “이전에는 직접 수술 현장에 들어가 치료법을 배웠다”며 “최근에는 사이니지를 통해 실시간으로 시술 과정을 지켜보며 초음파 화면까지 함께 띄워놓고 토론도 한다”고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