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준비된 새 얼굴을 기다리며

입력 2019-11-13 19:04
수정 2019-11-14 00:08
6.6 대 1. 50명을 뽑는 데 300여 명이 몰렸다. 서울 강남 입시학원이나 대기업 면접장 얘기가 아니다. 바른정당 시절 시작한 청년정치학교 이야기다. 개혁적 보수주의의 관점에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6개월 과정에 대한 청년들의 호응은 뜨거웠다.

대통령 탄핵 이후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건전한 보수주의 청년들은 ‘홍길동 딜레마’에 빠졌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한 홍길동처럼 보수임에도 보수를 자처할 수 없었던 것. 이들에게 개혁보수의 가치를 내건 청년정치학교는 아지트이자, 최후의 보루였다.

3기째 이어진 청년정치학교는 150여 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이 중 13명이 지난 지방선거에 출마했고, 일부는 시민사회단체를 결성해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청년정치학교의 교장으로서 이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설렘과 기쁨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세계의 젊은 정치 지도자들을 부러워한다. 선거 때마다 정치 신인 발굴을 위해 오디션 등 각종 이벤트도 진행한다. 하지만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제바스티안 쿠르츠 전 오스트리아 총리 등 젊은 지도자들은 이벤트로 선출된 사람들이 아니다. 각 정당에서 이뤄지는 정치적 교육과 훈련 그리고 경험과 실전을 바탕으로 꾸준히 성장한 사람들이다. 정치의 변화는 혜성 같은 신인이나 이벤트가 아닌, 정당 내에서 정치적 가치를 공유하고 이를 확산하기 위한 교육과 훈련을 통해 완성되는 것이다.

선거가 다가오니 벌써부터 물갈이 열풍이 분다. 지난 16대 총선부터 내리 다섯 번의 선거를 치르며 매번 평균 48%의 물갈이를 지켜봤다. 하지만 정치는 변하지 않았다. 최악만을 경신할 뿐이다. 왜 그럴까? 각 분야에 인지도 높은 전문가들을 뽑아 앉히는 ‘묻지마식 물갈이’의 한계 때문이다.

정치에서 필요한 것은 분야별 전문성과 인지도만이 아니다. 정치적 신념과 그 신념을 이루기 위한 정치력이 뒷받침돼야 한다. 신념과 정치력이 결여된 정치는 필연적으로 공천권자의 패권을 좇게 된다. 그 패권은 괴물이 돼 한국 정치를 나락으로 빠트린다.

정치에서 물갈이는 필요하다. 하지만 준비되지 않은 물갈이는 새로운 패권과 패거리를 만들어내는 명분으로 악용될 뿐이다. 대한민국의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이 적지 않다. 다음 총선에는 오디션 스타가 아닌, 자신의 철학과 가치를 품고 성장한 젊은 정치인들의 등장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