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작가 더그 위드가 곧 출간할 책 에서 트럼프의 사위 재러드 쿠슈너 백악관 선임고문과의 인터뷰를 공개했다. 쿠슈너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보낸 친서를 봤다고 했다. 김정은은 친서에서 “트럼프와 친구가 되기를 원하지만 김정일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말라고 했다”는 것이다. 핵은 김정은에게 “아버지의 일이고, 유일한 안보”라고 친서에 적혔다고 언급했다.
북한 핵 문제가 시작된 이후 30년간 한국과 미국을 혼란에 빠뜨린 주범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지가 있느냐는 의문’이었다. 양국에 새 정부가 출범할 때마다 북한과 대화해야 한다며 내세운 첫 번째 명분이 북한의 핵포기 의사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지금도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당근과 채찍으로 핵을 포기시킬 수 있다는 미련을 버리지 못한 채 실패한 비핵화 외교를 되풀이하고 있는 실정이다.
평창올림픽에 이어 열린 남·북, 미·북 정상회담은 김정은의 의사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비핵화 외교 30년간 한·미 정상이 북한 최고결정권자의 의사를 직접 들어볼 기회는 없었다. 노무현 대통령이 김정일을 만나 핵문제를 거론하긴 했지만 6자회담에서 해결한다는 원론적인 언급에 그쳤을 뿐이다. 김정은이 2018년 1월 신년사에서 “국가 핵무력 완성의 역사적 대업을 성취했다”고 선언한 후에 열린 정상회담인 만큼 핵에 대한 김정은의 의도를 직접 확인하는 것이 최대 과제였다.
그러나 한·미 정상은 같은 사람을 만나서 다른 판단을 내렸다. 트럼프는 하노이 정상회담 후 회견에서 김정은이 핵을 가지려 한다는 기자의 의견에 수긍하면서도 그의 핵보유를 허용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답변을 피했다. 그러나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영국 BBC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말하는 완전한 비핵화는 현존하는 핵무기와 핵물질을 전부 없애고 관련 시설을 폐기하는 것이라고 단언했다. 다만, 우리 국민은 김정은의 핵포기 가능성에 회의적이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를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80%에 달하는 것은 정상회담의 귀중한 학습효과다.
김정은의 친서는 3대 세습정권이 결코 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진솔한 고백이다. 이것이 작년 3월 평양을 방문한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국정원장에게 김정은이 말했다는 “선대의 유훈인 비핵화”의 참뜻이다. 지금까지 북한은 한·미 동맹 와해가 목적인 ‘조선반도 비핵지대화’를 남북한의 핵포기를 뜻하는 ‘비핵화’로 포장해서 우리를 기만했다. 이제 진실의 순간이 다가왔다. 더 이상 북한의 핵폐기 가능성에 미련을 둬야 할 이유가 없다.
김정은의 친서는 오래전에 사망한 비핵화 외교의 관에 마지막 대못을 박고 비핵화 시대의 종언을 고한 것이다. 김정은이 아무리 트럼프를 좋아한다고 해도 아버지를 버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이제 정파를 떠나서 국가적 차원에서 국민 보호를 위한 대책을 서둘러 강구해야 한다. 정부는 전술핵 재배치를 포함해 자체 핵역량을 구축하고 북한과 ‘핵 대 핵’의 균형을 맞춰 힘에 입각한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 그 다음, 북한에 ‘남·북·미 3자 핵군축 협상’을 제의하고 한반도 핵군축 시대를 주도적으로 열어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