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O2020' 시행 코앞인데…무덤덤한 정유株

입력 2019-10-28 17:34
수정 2019-10-29 02:49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고유황유 규제를 앞두고 하반기 내내 기대에 부풀었던 정유주가 최근 증권업계의 의심어린 시선을 받고 있다. 부가가치가 높은 저유황유 판매에 따른 수익 개선 가능성이 부각됐지만 최근 기대만큼 실익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정제마진(석유제품 가격에서 생산비용을 뺀 금액) 악화와 저유황유 공급 과잉 조짐이 곳곳에서 나타나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커지는 ‘IMO2020 효과’ 신중론

28일 유가증권시장에서 GS는 300원(0.59%) 떨어진 5만8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이날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도 각각 0.62%, 1.89% 하락했다. 정유주는 4분기 들어 IMO2020 효과에 대한 기대가 커졌다.

IMO2020은 내년부터 산성비를 유발하는 고유황유 대신 저유황유를 선박유로 사용하도록 하는 환경 규제다. 174개 IMO 회원국이 이 규제를 적용받는다. IMO2020 시행을 앞두고 선주들이 마진폭이 큰 저유황유 선주문에 나서면 4분기부터 실적 개선이 본격화할 것이란 관측이 많았다.

하지만 저유황유 공급이 수요를 웃돌 것이란 분석에 힘이 실리면서 기대치가 낮아지고 있다. 런던에서 열린 ‘국제 해운 콘퍼런스’에서 “주요 항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저유황유 공급이 이미 충분히 이뤄졌고, 일부 지역에선 초과공급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황유식 NH투자증권 연구위원은 “규제가 시행되면 선박유는 저유황유와 해양경유(MGO), 디젤 등으로 수요가 분산될 것”이라며 “생산설비 가동률을 1%만 올려도 공급량이 충분해진다”고 설명했다. 황 연구위원은 “오히려 원유 도입 비용이 증가해 정제마진이 줄어들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정제마진도 악화

3분기 들어 개선 추세를 보인 정제마진도 최근 급감하고 있다. 증권업계에 따르면 10월 셋째주 싱가포르 복합 정제마진은 배럴당 2.8달러로, 지난달 평균(7.5달러)보다 62.6% 줄었다. 지난 1월(1.7달러) 후 최저치다. 국내 정유사들의 실적은 운송비를 반영한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갑작스러운 정제마진 악화는 지정학적 리스크(위험) 때문이다. 지난 11일 사우디아라비아 인근 해상에서 이란 유조선 한 척이 미사일에 맞아 폭발한 뒤 원유 운송비가 급증했다. 중국 해운업체에 대한 미국 제재로 글로벌 유조선 공급 부족이 심해진 점도 운송비를 끌어올리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주요 정유회사의 화학사업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파라자일렌(PX)의 신규 설비 가동 증가 추세도 우려를 키우고 있다. 중국의 PX설비 가동률이 높아지면서 국내 정유기업의 수익성이 나빠질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설비 고도화 수혜 기대해볼 만”

그럼에도 일각에선 4분기 이후 정유주 흐름은 완만한 상승 궤적을 그릴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IMO2020 효과가 기대에 못 미치더라도 정제설비 고도화를 촉발시켜 중국 소규모 정유사와의 경쟁력 격차를 확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강동진 현대차증권 연구원은 “IMO2020 시행은 글로벌 정유업계에서 경쟁력이 낮은 정제설비의 통폐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며 “설비 경쟁력이 뛰어난 한국 기업에 유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올 상반기까지 대규모 정기보수를 통해 고부가가치 제품 비중을 높인 에쓰오일은 요즘 증권업계가 꼽는 최선호 정유주다. 박연주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에쓰오일은 고도화 설비가 완공돼 고유황연료유 생산 비중이 낮은 만큼 올 4분기와 내년 1분기 업종 내에서 차별적인 실적을 보여줄 것”이라고 내다봤다.

■ IMO2020

174개국을 회원으로 둔 국제해사기구(IMO)가 2020년부터 선주들이 선박연료유의 황 함유량을 최대 0.5%까지 낮춘 저유황유를 쓰도록 강제하는 규제다. 산성비를 유발하는 황산화물 배출을 막기 위해서다. 저유황유는 고유황유보다 부가가치가 높아 정유주 이익 개선에 도움을 줄 수 있다.

한경제/고윤상 기자 hanky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