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장관 소집한 문재인 대통령 "건설투자 늘려라"

입력 2019-10-17 17:32
수정 2020-11-01 15:35

문재인 대통령이 17일 경제부처 장관들을 소집해 경제활력 제고 방안을 논의했다. 문 대통령이 경제정책을 점검하기 위해 경제장관회의를 주재한 것은 올 들어 처음이다. 글로벌 경기 하강으로 각종 경제 지표에 ‘빨간불’이 켜지면서 긴급히 마련됐다.

문 대통령은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회의에서 현 경기를 “엄중한 상황”이라고 표현하며 “경제와 민생에 힘을 모을 때”라고 말했다. 이어 “민간 활력이 높아져야 경제가 힘을 낼 수 있다”며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 조성에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고민정 청와대 대변인은 “대외 여건 악화가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엄중한 상황이라는 점에 참석자들이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이례적으로 건설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국민 생활 여건 개선을 위한 건설 투자 방향을 견지하면서 서민 주거 공급, 광역교통망 등 필요한 건설 투자는 조기 착공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3기 신도시, GTX(수도권 광역급행철도) 조기 착공을 통한 건설 분야 고용창출, 경제활력 제고와 함께 내년 수도권 표심까지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내년부터 중소기업(300명 미만)으로 확대 시행하는 주 52시간 근로제 안착 방안도 논의됐다.

확장 재정 기조를 이어가겠다는 의지도 분명히 했다. 문 대통령은 “급격한 경기 위축을 막고 경기 반등 여건을 조성하기 위한 재정지출 노력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경기가 어려울 때 재정지출을 확대해 경기를 보강하고 경제에 힘을 불어넣는 것은 정부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도 했다.

고용지표에 대해선 “정책 일관성을 지키며 노력한 결과 꾸준히 개선되고 있다”면서도 “최근 고용 상황에서 40대와 제조업 고용 감소는 아픈 부분”이라고 대책을 당부했다. 이날 회의는 문 대통령이 ‘조국 정국’에서 벗어나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 회의는 늦은 오찬을 포함해 약 세 시간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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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 "경제상황 엄중하다"면서도…소주성 등 정책전환 언급 안해

1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문재인 대통령 주재 경제관계장관회의는 형식과 시점 등 모든 면에서 파격이었다. 문 대통령이 경제관계장관회의를 주재한 것 자체가 처음인 데다 ‘경제 사령탑’인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한국 경제 설명회 참석차 미국 뉴욕에 갔는데도 긴급하게 소집했기 때문이다. 최근 정부의 안일한 경제상황 인식에 대한 비판이 커지자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그렇지 않다’는 메시지를 전하려는 것 아니겠느냐”는 해석이 나온 배경이다.

이날 문 대통령의 발언은 과거와 여러모로 달랐다. 200자 원고지 10장 분량의 모두발언에 ‘투자’가 열 차례 언급됐다. ‘단골 메뉴’였던 양극화와 불평등은 자취를 감췄다. “우리 경제가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지난달 16일 수석보좌관회의 때의 모두발언(투자 1회·양극화 2회·불평등 2회)과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해진다. 하지만 건설·사회간접자본(SOC) 투자를 비롯한 재정투입 확대 외에 경제활력을 끌어올릴 만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락하는 지표…달라진 靑 경제인식

전문가들은 경제를 읽는 문 대통령의 ‘눈’이 달라진 배경으로 ‘1%대 성장 가능성’을 꼽는다. 오는 24일 한국은행이 발표하는 3분기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기대에 못 미칠 가능성이 커진 게 영향을 미쳤을 것이란 얘기다.

올해 성장률이 2%를 넘으려면 3분기와 4분기의 전분기 대비 성장률이 각각 0.65% 이상 나와야 한다. 하지만 민간경제연구소는 3분기 성장률이 0.4~0.6%에 그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정부가 ‘마지노선’으로 삼는 2%대 성장률 수성이 어렵다고 본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그동안 전체 성장률을 떠받치던 정부 재정지출의 ‘약발’이 다 됐기 때문이다. 지난 2분기에는 민간(성장 기여도 -0.2%포인트)이 갉아먹은 성장률을 정부(1.2%포인트) 홀로 끌어올려 1.0%를 만들었다. 올해 전체 예산의 65.4%를 상반기에 푼 덕분이다. 반면 3분기에는 전체 예산의 13.5%만 투입됐다. 설비투자, 건설투자, 수출 모두 ‘마이너스 성장’ 행진을 이어가는 등 민간 부문은 여전히 바닥을 기고 있다.

결국 현 경제상황에 대한 문 대통령의 생각을 바꾼 건 ‘위기’를 가리키는 경제지표들이었다는 얘기다. 문 대통령이 이날 “민간 활력이 높아져야 경제가 힘을 낼 수 있다. 기업 투자를 격려하고 지원하며 규제 혁신에 속도를 내는 등 기업이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말한 것도 민간의 도움 없이는 성장률 2% 달성이 쉽지 않다는 점을 내비친 것으로 산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구체적인 해법이 없다”

산업계의 반응은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다. “대통령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과 경제를 살리기 위한 처방이 따로 논다”는 이유에서다. 민간 활력을 살려야 한다면서 ‘적극적인 재정 정책’으로 위기를 극복하겠다고 한 게 대표적이다.

문 대통령은 ‘경제의 허리’인 40대와 ‘산업의 뿌리’인 제조업 부문에서 일자리가 줄어든 데 대해 “가슴 아프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검토해달라고 당부했다. 40대와 제조업의 고용이 감소하기 시작한 것은 각각 46개월, 17개월 전이라는 점에서 문제 인식 자체가 너무 늦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대기업 임원은 “정부가 고용정책의 초점을 ‘세금 일자리 확대’에서 ‘민간 일자리 확대’로 전환해야 기업 투자를 이끌어내기 위한 정책이 뒤따를 것”이라며 “대통령은 말로는 ‘민간 경제 활력을 높여야 한다’고 하지만 정작 기업들의 투자의욕을 꺾은 노동·환경·공정거래 규제를 시장친화적으로 바꾸겠다는 얘기는 없다”고 말했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대통령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면 소득주도성장 정책을 전면 수정하고 산업구조개혁에 나서는 등 그에 걸맞은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형호/오상헌/서민준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