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이 산업 현장에서 기업인을 만나도 비판이고, 안 만나도 비판이니….”
얼마 전 사석에서 만난 청와대 핵심 인사는 답답함을 토로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수첩까지 꺼내들었다. 그는 “세례 요한이 떡과 포도주를 안 마시니 마귀라 하고, 예수가 먹고 마시니 탐한다고 했다”는 구절을 인용해가며 답답한 속내를 드러냈다. 경제 상황과 대통령의 기업현장 방문 행보를 두고 보수와 진보진영의 비판이 교차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 섞인 푸념이었다.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경제행보가 빨라지면서 대기업 총수들을 만나는 빈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지난 10일 삼성디스플레이 비전선포식에 참석한 이재용 삼성 부회장과는 대통령 취임 이후 9번, 14일 미래차비전 선포식 행사장에서 함께한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은 총 11번 만났다. 이를 두고 일부 진보언론과 시민단체에서 “친(親)대기업으로 기우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보수 민간연구기관에서는 “우리 경제가 선방하고 있다”는 이호승 경제수석의 발언을 두고 “청와대의 상황 인식이 지나치게 낙관적”이라고 연일 비판을 가하고 있다.
여러 지적에도 문 대통령의 경제 행보는 계속될 전망이다. 대통령이 일선 산업현장을 자주 찾는 것은 반길 일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전날 한국의 성장률 전망치를 2.6%에서 2.0%로 대폭 낮추는 등 각종 경제지표에 빨간불이 들어온 마당에 경제를 최우선으로 챙기는 것은 당연한 책무다.
‘조국 정국’이 두 달 넘게 이어지면서 경제 현안은 사실상 ‘버려진 자식’ 취급을 받았다. 청와대 한 경제참모는 “예전이었으면 사상 처음 500조원을 돌파한 예산안을 두고도 엄청난 격론이 벌어졌을 텐데 조국 정국이 블랙홀이 되는 바람에 언론이 어떤 정책에도 관심이 없더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최근 청와대 기류에도 변화가 감지된다. ‘확증편향’ 경향이 강고했던 정권 초반과 달리 전략적 유연성을 강조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문 대통령과 경제참모들의 표현 속에 ‘소득주도성장(소주성)’ 단어가 사라지고 있는 게 대표적 사례다. 청와대 정책사령탑인 김상조 정책실장이 “보수와 진보 양쪽으로부터 비판받는 정책이 오히려 지속 가능하다”며 ‘양손잡이 경제론’을 설파하는 점도 눈길을 끌었다.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후유증을 통해 ‘선의의 정책이 반드시 선의의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는 논거를 증명한 청와대의 자성으로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문재인 정부는 11월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있다. “더 이상 소모적인 논쟁으로 허비할 시간이 없다”는 얘기도 빈말이 아니다. 실용적인 정책 대응을 강조하는 것도 이전에 비하면 전향적이다. 하지만 시장과 기업에서 여전히 의구심이 사라지지 않는 이유를 청와대는 되새겨 봐야 한다.
노무현 정부 당시 정책사령탑을 맡았던 변양균 전 청와대 정책실장은 저서 <경제철학의 전환>에서 “정부는 정책 성과가 좋지 않으면 1단계로 통계를 강화하고 2단계로 전략을 수정하지만, 정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3단계까지는 가지 못한다”고 지적했다. 신념과 철학의 전환이 필요한 데다 그 결과는 장기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논지다. 임기 절반을 남겨둔 문재인 정부 청와대에서 보수와 진보, 두 진영에서 욕먹을 각오를 가진 양손잡이 참모들이 많아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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