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자택을 압수 수색 시작할 무렵에 검사 팀장에게 장관이 전화 통화한 사실 있죠?"
"네, 있습니다. 제 처가 놀라서 연락이 왔습니다. 압수 수색 당했다고요. 그래서 지금 상태가 좀 안 좋으니까 좀 차분히 해 달라고 부탁드렸습니다."
조국 법무부 장관이 자택 압수수색 과정에서 현장 검사와 전화 통화를 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일고 있다. 조 장관은 "개입이나 관여가 없었다. 인륜의 문제"라고 주장하면서 또 다시 가족애를 발휘했다.
조 장관은 지난 26일 진행된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주광덕 자유한국당 의원과 마주했다. 주 의원은 조 장관이 지난 23일 서울 방배동 자택 압수수색 당시 현장을 지휘하던 서울중앙지검 소속 검사와 통화한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주 의원은 "장관이 자기 사건 수사하는 검사한테 전화하는 거 자체가 검사는 협박이고 압박이다"라고 강도높게 비난했고 조 장관은 "제 처가 매우 정신적, 육체적으로 안 좋은 상태여서 좀 안정을 찾게 해 달라고 부탁을 드렸다. 압수 수색 진행에 대해 지시를 한 바가 없다"고 항변했다.
이에 박지원 대안정치연대 의원은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아무리 부인이 급하다고 하더라도 그 전화를 부인이 바꿔주니까 건강을 염려해서 잘 부탁한다라고 얘기한 것 자체가 법무부 장관으로서 매우 부적절했다"면서 "만약 저 같으면 아내가 그렇게 급한, 물론 당황해서 호소를 했겠지만 만약 바꿔주는 분이 검사라고 하면 그냥 아무 소리 않고 법무부 장관이기 때문에 끊어버렸으면 하는 생각이 많다"고 밝혔다.
박 의원은 이어 "물론 야당은 조 장관에 대해서 정치적 공세를 아주 강공하고 있지만 인간적으로 따져볼 때 자기 아내가 아주 곤경에 처해 있고 또 건강 문제가 염려된다고 하면 누구에게 맨 먼저 전화를 하겠나"라면서 "인간적으로 보면 조 장관도 그러한 얘기를 할 수 있었지만, 하필 당사자이고 또 법무부 장관이기 때문에 부적절했다. 이런게 인간적으로 보면 매정한 얘기다"라고 두둔했다.
조 장관의 가족 사랑은 앞서 6일 열린 인사청문회에서도 유감없이 발휘됐다.
동양대 PC반출 이유를 묻는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 질의에 "제 처가 (영주로) 출근할 수 있는 조건이 아니라서 영주 연구실에 있는 PC를 가져온 것"이라며 "지금 여러가지 언론 취재 (등으로 인해) 난감한 상태라서 본인도 자기 연구실 PC 내용을 봐서 점검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해명했다.
이어 "(아내가) 몸이 너무 안 좋은 상태라서 한투 직원이 운전을 했고, (반출)하고 난 뒤에 제 처는 부산으로 내려갔다. (아내가 한투 직원에게) 돌아올 때까지 좀 가지고 있으라고 그랬다"고 했다. 이어 "서울에 귀경하고 난 뒤에 (두 사람이) 만났고, 검찰에서 연락이 와서 그걸 그대로 임의제출을 했다"고 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집에서 쓰려고 가져왔다면서 왜 김씨의 트렁크에 뒀다가 (검찰에) 내느냐"고 했다. 이에 대해 조 후보자는 "집에서 일을 하려고 가져왔다고 하는 그런 취지"라고 했다.
상식적으로 서울에 있는 직원이 영주까지 운전을 해주고 컴퓨터까지 맡아줬다는 데서 고개가 갸웃거려질만도 한데 조 장관은 끝까지 아내의 입장에서 이런 일련의 일들이 전혀 문제가 없었다며 '몸이 너무 안좋은 상태의 아내'를 강조했다.
모든 의혹에 대해 '아내가 몸이 안좋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 과정을 수사하던 검찰은 김 씨의 휴대전화를 2차례 압수수색했고, 정 교수와 김 씨 간에 이런 내용의 대화가 담긴 문자 메시지와 통화내역 등을 입수했고 하드 구입 내역이 담긴 정 교수의 카드 영수증도 확보했다.
김 씨는 정 교수 자택과 연구실 PC 등을 빼돌린 것과 관련해 '정 교수의 요청을 거부할 수 없었다'는 취지로 진술한 걸로 전해졌다.
검찰은 정 교수의 연구실 PC와 교체한 자택 PC 하드디스크 등을 모두 확보하고 해당 PC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었는지, 교체한 이유가 뭔지 등을 수사하고 있다.
이런 정황이 드러난 후에도 조 장관은 "PC교체를 알고 있었느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지 않았다.
인사 청문회 열리기 전 먼저 열린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자신에게 쏟아진 질문 세례에 시종일관 침착하고 거침없이 답변하던 조 장관을 흔들어 놓은 것도 역시 가족이었다.
조 장관은 "만신창이가 됐지만, 할 수 있는 일은 다 할 것"이라고 강하게 신념을 앞세웠지만 딸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오자 한때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조 장관은 "실제 흙수저인 사람들의 마음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 고통을 얼마나 알겠습니까? 그게 저의 한계입니다. 그렇지만 그런 한계를 알고 있으면서도 제가 할 수 있는 걸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다가 멀리 혼자 사는데 밤늦게까지 취재진에 시달린다는 딸의 상황을 설명하다 눈시울을 붉혔다.
조 장관은 "혼자 사는 딸아이한테 집 앞에 오피스텔 앞에 밤 10시에 문을 두드립니다. 남성 기자 둘이, 남성 둘이 두드리면서 나오라고 합니다. 그럴 필요가 어디가 있습니까"라며 "딸이 무서워서 벌벌 떨며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자녀의 문제 앞에 흔들린 것은 조 장관의 부인 정 교수도 마찬가지였다.
SNS를 통해 검찰의 수사를 공식적인 언어로 반박해온 정 교수는 지난 22일 검찰 2차 조사를 받은 딸에 대해 "(검찰이) 부산대 성적과 유급을 운운하는 부분에서 (딸 아이가) 모욕감과 서글픔에 눈물이 터져 한참을 울었다"면서 '덫에 걸린 쥐새끼'로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적었다.
정 교수는 "딸 아이의 생일에 아들이 소환돼 전 가족이 둘러앉아 밥 한끼를 못먹었다"며 생일답지 않은 생일을 보낸 딸에게 한없는 안타까움을 표하고 조 장관은 밤 늦게 생일 케이크를 들고 귀가하는 가정적인 모습을 보여줘 지지자들로 하여금 검찰의 무리한 수사에 비난하는 여론을 일게 했다.
하지만 이날 조 장관의 딸 조모 씨 지인의 SNS에 그가 지인과 분위기 있는 식사를 했다는 사실이 보도돼 부모의 안타까운 자녀사랑과 엇박자를 냈다
조 장관이 박 의원의 바람대로 '매정한 가장'이 돼야 할 필요는 없지만 법무부 장관으로서의 무게를 선택한 이상 그에 상응하는 엄격한 책임과 의무도 그의 몫이다.
정 교수는 SNS에서 표현된 울먹이는 딸을 다독여주는 다정한 아빠. 달래주면 딸이 더 울까봐 안아주지도 못했던 엄마의 안타까운 심정.
'그 정도는 해도 괜찮다. 불법도 아니니까 문제없다'는 조 장관의 생각과 '남에게 대는 잣대는 칼 같은데 자신과 가족에게는 한없이 관대하다'고 느끼는 서민들의 눈높이는 어느 지점에서 합치될 수 있는 것일까.
이낙연 국무총리는 대정부질문에서 조 장관 통화 논란과 관련해 "아쉬움이 있다",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우회적으로 부정적 입장을 드러냈다.
권성동 한국당 의원의 ‘조국 인사 참사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허탈감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에는 "우리 사회가 공정한가에 대한 깊은 회의가 국민 사이에 싹텄다"면서 "가진 사람들이 제도를 자기의 기회로 활용하는 일들이 많이 번지고 있다는 데 분노하고 계신 것으로 짐작한다"고 말했다.
'가족 펀드' 수사와 표창장 위조 의혹으로 정점으로 치닫던 조 장관 가족 수사가 자택 압수수색으로 대망의 마침표를 찍나 싶은 순간 또 다시 불거진 '검사와의 통화' 논란으로 정계가 다시금 격랑에 휩싸였다.
인사 청문회는 조국으로 시작해 조국으로 끝났고 민생, 4강 외교, 대북 문제 및 대미 등 우리나라 정세와 맞물려 중요한 이슈들은 모두 묻히고 말았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