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 워치] 진하게 느껴지는 日총리실 '입김'…일본 택시요금 동결된 배경은

입력 2019-09-27 09:46
수정 2019-09-27 14:39

일본은 내달부터 소비세율이 8%에서 10%로 인상됩니다. 각종 생활필수품을 비롯한 소비재 물가가 일제히 오를 예정이어서 소비자들의 걱정이 적지 않습니다. 일본 언론들도 연일 “소비세율 인상이 카운트다운에 들어갔다”며 관련 안내소식을 전하는 데 분주합니다. 하지만 요금이 ‘동결’된 분야도 없지 않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택시요금인데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부가 막판에 갑작스럽게 택시요금 동결을 결정해 업계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던 것이 밝혀졌습니다. 일본 정부가 소비세율 인상으로 소비가 둔화되고 경기가 악화될 것에 대한 우려를 얼마나 심각하게 하고 있는지가 드러났다는 분석입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택시업계는 당초 이번 소비세율 인상에 맞춰 택시요금 인상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요금변경 공시 시한에 맞춰 일본 국토교통성이 “(요금인상을)멈추고 기다려라”로 긴급하게 통보했다고 합니다. 소비세율 인상 후 경기둔화 가능성을 우려한 일본 정권의 조치이긴 하지만 다른 요금과 비용은 거의 다 오르는데 홀로 요금인상을 못하게 된 택시업계는 정부의 일방적인 통보에 당황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일본에서 택시운임 개정은 변경 30일 전에 공지하는 것이 그동안의 규칙이었다고 합니다. 10월1일 소비세율 인상에 맞춰 택시요금을 개정하려면 8월30일까지는 요금변경 계획을 공시했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본 국토교통성 운수국은 8월30일 오전에 택시협회 간부에게 전화를 걸어 “요금 인상 작업을 하지 말고 기다려라”는 통보를 했습니다.

10월부터 기본요금을 인하하는 대신 기본거리를 단축하고, 주행요금을 10%정도 인상하는 방안을 신청할 준비를 했던 택시협회는 정부의 갑작스런 통보조치에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습니다. 새 요금안이 무난하게 정부의 승인을 받을 것으로 예상하고 이미 각 회원사들에게 새로운 요금방안을 통지할 준비가 돼 있었는데 순식간에 백지화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통상 일본에선 ‘네마와시(根回し)’라고 해서 주요 의사결정 전에 비공개적으로 관계자들에게 일의 내용이나 의도 등을 설명해 의견조정을 마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이례적으로 마감일에 임금동결 통지가 사전설명 없이 일방적으로 전해진 것입니다.(네마와시는 나무를 옮겨심기 전에 일을 쉽게 하기 위하여 미리 나무 주변을 파서 굵은 뿌리만 남겨두고 잔뿌리를 잘라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을 의미하며 사전정비작업이란 뜻으로 널리 사용됩니다.)

이 같은 일본 정부의 임금동결 방침은 소비세율 인상에 발맞춰 요금을 인상하겠다는 계획을 신청했던 25개 도·도·부·현 업계 간부에게 동시에 전해졌다고 합니다. 일본 택시업계에는 전직 국토교통성 관료 출신 등 OB들이 적지 않게 포진해 있지만 이들에게도 사전에 통지가 전혀 없었다고 합니다. 이번 택시요금 동결 조치가 갑작스럽게, ‘위에서 부터’떨어진 지시임을 암시하는 부분입니다.


택시요금이 동결되는 것은 이용자 부담이 줄기 때문에 소비자에겐 이득입니다. 하지만 택시회사로선 다른 물가는 모두 오르는 상황에서 택시요금만 동결되면 회사 수익이 악화되고, 택시기사 처우가 상대적으로 악화될 수 있어 가격 인상을 추진해왔습니다.

처음에는 국토교통성도 업계 입장에 긍정적인 반응이었지만 공시일 며칠 전에 분위기가 급변했다고 합니다. 관계부처 장관들이 모여 물가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에서 도쿄도의 택시요금 문제가 거론됐고, 소비세율 인상에 따른 충격완화 주문이 국토교통성으로 이어졌다고 합니다. 국토교통성도 “총리실(총리관저)가 움직이고 있다”고 느껴 방향을 틀기 시작했고, 8월 30일 아침에 소비자청, 내각부, 경제산업성에서 ‘경기 영향을 고려하고 소비자 부담을 따져 택시요금 인상을 신중하게 검토했으면 한다’는 의견서가 전달됐다는 전언입니다. 결국 총리실 눈치를 본 국토교통성이 부랴부랴 요금동결을 결정해 통지했다는 설명입니다.

일본 내에선 소비세율 인상의 충격을 줄이는 부담을 정부가 아니라 택시회사라는 중소기업에게 전가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이와 함께, 공시 마감일에 전화한통으로 그동안의 준비상황을 뒤엎을 정도로 일본 실물경제에 미치는 관(官)의 영향력이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도 드러났습니다. 무엇보다 관료조직들도 총리라는 최고 정책결정자의 심기를 읽고 그에 따르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점도 분명해졌습니다.

이번 일본의 택시요금 동결 조치는 일본 정부가 소비세율 인상 후의 경기를 얼마나 걱정하고 있는지가 드러남과 동시에 일본사회의 관료중심 문화, 관료조직의 ‘손타구(忖度·윗사람 마음을 헤아려 행동하는 것)’가 얼마나 만연해 있는지도 동시에 보여줬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