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서 와, 리츠는 처음이지…큰 장 선 '빌딩 공동구매' [부동산 간접투자시대 ①]

입력 2019-09-24 10:12
수정 2019-09-30 10:48

주식뿐 아니라 부동산시장에도 간접투자(펀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세상이 '제로 금리'를 넘어서 '마이너스 금리'까지 예고하자 은행이자보다 배당수익 쪽으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정부도 공모형 부동산 리츠(REITs)에 분리과세 혜택을 주는 지방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한국형 금융자본주의는 부동산 시장에서도 방향타를 틀어 쥔 것이다. 리츠 투자의 비밀을 엿본다 [편집자주]

점심 때 마실 커피 한 잔 가격으로 스타벅스 건물에 투자할 수 있는 길이 더 넓어진다. 정부가 공모 리츠(REITs) 활성화 방안을 내놨다. 가계 유동성을 흡수하고 국민의 소득 증대를 돕겠다는 취지다.

파격적인 세제 혜택이 골자다. 공모 리츠·펀드 투자자에게는 5000만원 한도로 배당소득에 대해 분리과세를 적용하고 세율을 9%로 내린다. 공모 리츠·펀드나 이들이 100% 투자하는 사모 리츠·펀드에 대한 취득세 감면도 추진한다. 공모상품에 차별적 혜택을 제공해 개인 투자자들의 진입 장벽은 더 낮아진다.

이번 활성화 방안으로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 내에서 리츠가 중요한 투자자산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장기적으로는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꾸준한 배당 매력을 제공하는 리츠의 매력이 더욱 부각될 것으로 예상된다.

◆규모는 급성장했지만…'속 빈 강정' 같은 리츠

24일 한국감정원이 운영하는 리츠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리츠 자산규모는 43조2358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9조36억원(20.8%) 급증했다. 2012년 71개에 불과했던 리츠 수도 지난해는 219개로 약 3배 가까이 늘어났다.

리츠 시장은 급격하게 몸집을 불려왔지만 '속 빈 강정'에 가까웠다. 수치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2년 이후 3조원 안팎으로 증가해온 국내 리츠시장은 2016년 7조원대, 2017년 9조원대로 특히 큰 폭의 성장을 이뤄냈지만 배경에는 LH 정책 리츠가 시장 규모를 늘리는 데 주효했다.

채상욱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2001년 부동산 투자회사법 제정으로 한국 리츠 시장이 본격적으로 커지기 시작한 것이 맞다"면서도 "그간 대부분의 리츠가 사모로 운영된 점, 리츠의 대부분이 자산유동화 성격의 신탁형이거나 기업 구조조정용 CR리츠인 점 등은 금융시장에서 리츠의 존재감을 희미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국내 주식시장에는 이리츠코크렙 모두투어리츠 케이탑리츠 에이리츠 신한알파리츠 등 총 5개의 리츠가 상장돼 있다. 시장에서 가장 오래된 리츠는 에이리츠로 2011년 상장했다. 케이탑리츠도 이듬해인 2012년에, 모두투어리츠는 2016년, 이리츠코크렙과 신한알파리츠는 지난해 시장에 진입했다.

5곳 가운데 3곳은 상장 이후 주가가 반토막 났다. 그나마 이리츠코크렙은 20일 52주 신고가를 경신하는 등 성장하고 있다. 신한알파리츠 역시 상장 후 최고가인 8140원 터치를 시도하고 있다.



◆황금기 맞는 리츠

하지만 판이 뒤집히게된다. 공모 리츠를 활성화하기 위해 정부가 직접 팔을 걷어붙였다. 가계 유동성을 흡수하고 일반 투자자들의 소득을 늘리는데 초점이 맞춰졌다.

가장 주목되는 점은 세금이다. 공모형 리츠에 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에 세제 혜택을 준다.

공모 리츠나 펀드 투자자에게 5000만원 한도로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세율은 현행 14%에서 9%로 하향 적용한다. 또 공모 리츠·펀드 또는 이들이 100% 투자하는 사모 리츠·펀드에도 재산세 분리과세를 적용한다. 공모 리츠·펀드에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의미다.

삼성증권에 따르면 5000만원을 공모리츠에 투자해 연간 수익률 8.5%(지난해 리츠 평균 수익률), 매각차익 32.6%(지난해 리츠 평균 청산수익)를 거뒀다고 가정했을 때 배당 소득세 9%의 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하면 공모상품은 일반과세 대비 약 0.4%포인트, 종합과세 대비 약 2%포인트의 수익률 개선이 가능하다.

여기에 공모리츠의 재산세 분리과세를 통해 사모상품은 공모 대비 0.5~0.9%포인트의 세율 증가가 예상돼 공모 상품은 사모 상품보다 연간 0.3%포인트의 우위가 예상된다.

이경자 삼성증권 연구원은 "배당소득에 대한 분리과세와 공모 리츠 재산세 분리과세를 종합해 고려하면 공모는 사모보다 약 2.3%포인트의 수익률 우위를 갖게 된다"며 "이는 내년인 2020년부터 바로 적용될 전망"이라고 봤다.

기업 투자자에도 세제 혜택을 준다. 기업이 보유한 부동산을 공모 리츠에 제공하면 리츠는 부동산을 제공한 대가로 리츠 주식과 부동산 매각 자금을 기업에 준다. 이 때 매각자금에 대한 법인세를 내야 하는데 이를 리츠 주식을 처분할 때까지 미뤄준다.

안정성을 높여 대중화를 이끈다. 일정규모 이상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상장 리츠에 대해 전문 신용평가기관의 신용평가를 받고 평가결과를 공시할 예정이다. 연기금, LH 등이 자금을 대는 앵커리츠를 블라인드 방식으로 조성해 다수의 공모 자(子) 리츠·펀드도 끌어낸다.

이경자 연구원은 "해당 방안이 성공하면 싱가폴식 앵커리츠 모델이 탄생하는 셈"이라며 "싱가폴 리츠는 대부분 공기업과 국부펀드가 투자해 높은 신뢰를 기반으로 투자자의 수요 증대는 물론, 자금조달 비용에서도 우월해 주주의 배당수익 제고로 귀결되고 있다"고 강조했다.



◆저성장 시대 부동산 투자, 안정적 배당 '부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우리나라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4%에서 2.1%로 하향 조정했다. 5월 전망치를 낮춘 지 불과 4개월 만에 0.3%포인트 내려잡았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세계 경기가 악화되면서 선진국은 물론 신흥국에서도 완화적 통화정책이 잇따르고 있다. 이에 금리 역시 점점 낮아지고 있다.

저성장, 저금리 기조 속에서 부동산 투자는 안정적인 배당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리츠는 배당가능이익의 90% 이상을 배당해야하는 법적 의무를 가졌다. 지속적인 현금흐름을 원하는 투자자들이 리츠를 주목하는 이유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리츠 결산배당 수익률은 8.5%(임대주택 제외)다. 2017년 7.5%, 2016년 10.5%, 2015년 7.6%, 2014년 5.6% 등이다. 같은 기간 은행의 수신금리가 1.4%, 국고채 3년물 금리 2.09% 등을 감안하면 상당한 수익이다.

이남석 KB증권 연구원은 "리츠는 배당수익률이 쏠쏠한데다 배당금의 예측 가능성이 높다"며 "여기에 부동산 가격상승에 따른 시세차익 등으로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상장 리츠 시장은 본격적인 개화기를 맞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광수 미래에셋대우 연구원은 "오랫동안 우리나라에서 부동산 투자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을 때 가격 상승으로 발생한 이익(자본이익)이 중요한 투자 동기였지만 이제는 자본이득보다는 안정적인 배당 수익이 우선시 되는 패러다임 전환기"라며 "공모 리츠는 포트폴리오 내에서 중요한 투자자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송렬 한경닷컴 기자 yisr0203@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