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지난 7월부터 반도체·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의 한국 수출을 규제하고 있는 가운데 국내 업체들이 소재 국산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일본 정부가 일부 신청 건에 대한 수출을 ‘찔끔’ 허가했지만, 언제 다시 수도꼭지 잠그듯 규제를 강화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에서다.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일본이 수출을 규제한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식각액), 포토레지스트(감광액),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디스플레이용 소재) 중 가장 빠른 속도로 국산화가 이뤄지고 있는 품목은 불화수소다. 솔브레인은 이달 중 충남 공주에 추가로 건설한 불화수소 정제공장 가동에 들어간다. 기존 제1공장만으로는 업계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제2공장을 추가로 지었다.
솔브레인은 그동안 고순도 불화수소를 이원화해 생산해왔다. 전체 생산량의 약 70%는 일본 스텔라로부터 고순도 불화수소를 수입한 뒤 첨가제 등을 섞어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가 원하는 조건에 맞게 ‘맞춤형 제품’을 제공했다. 나머지 약 30%는 중국에서 원재료(무수불산)를 들여와 순도를 높이는 정제 작업을 거쳐 납품했다. 이 회사 고위 관계자는 “제2공장 수율(정상품 비율)을 제1공장 수준으로 끌어올리면 국내 반도체·디스플레이업계가 원하는 만큼의 고순도 불화수소를 공급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업계에서는 이미 국산화가 빠른 속도로 진행 중이다. LG디스플레이는 이달 안에 기존에 사용하던 일본산 불화수소를 100% 국산화할 계획이다.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 들어가는 불화수소는 반도체용보다는 순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의 화두는 ‘국산화’가 아니라 ‘수입처 다변화’에 맞춰져 있다. 삼성전자는 이달 초부터 솔브레인과 이엔에프테크놀로지가 대만산 불화수소를 수입해 가공한 제품을 일부 양산 라인에 시험 적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K는 그룹 차원에서 소재 국산화에 발벗고 나섰다. 반도체용 고순도 불화수소를 개발하겠다고 밝힌 SK머티리얼즈는 지난달 ‘정보기술(IT) 소재 솔루션 플랫폼’이란 상설 기구를 출범시켰다. 반도체 웨이퍼 제조사인 SK실트론은 지난 10일 미국 화학 회사 듀폰의 실리콘카바이드(SiC) 웨이퍼 사업 부문을 인수했다. 반도체 웨이퍼 시장의 50% 이상을 일본 신에쓰와 섬코가 차지하고 있는 상황에서 차세대 반도체용 웨이퍼 기술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소재 기술 자립이라는 정부와 사회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 과감한 투자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다만 포토레지스트와 플루오린 폴리이미드는 일본 업체와의 기술 격차가 커 단기간 내에 국산화하기 힘든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