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장비업체인 넥스틴은 2015년 반도체 웨이퍼의 초미세패턴 결함 등을 찾아내는 검사장비를 국산화하는 데 성공했다. KLA-텐코(미국)와 히타치(일본)가 장악한 시장을 파고들 수 있었던 것은 이스라엘이 보유한 첩보위성의 고해상도 촬영기술을 적용했기 때문이다. 국내 업체에서 삼성과 LG를 제외하고 중소기업으로는 유일하게 이스라엘에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는 이유다. 박태훈 넥스틴 사장(사진)은 “제품을 개발해 판매하는 사업화까지 무려 6년이 걸렸다”며 “연구개발(R&D) 투자와 글로벌 고객 확보가 기술 국산화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넥스틴은 제조 분야 ‘유니콘(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 기업 후보군으로 꼽힌다. 반도체 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기업에 뒤지지 않는 가격 및 기술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서다. 박 사장은 넥스틴을 글로벌 유니콘 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해외 시장 진출 구상을 비롯해 메모리·비메모리 분야를 아우르는 다양한 제품 포트폴리오 전략을 밝혔다.
첩보위성 기술 활용해 국산화
서울대 화학과를 졸업한 박 사장은 삼성전자 반도체연구소와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업체인 KLA-텐코에서 근무했다. 반도체 장비 분야 독과점 기업이 막대한 이익을 내고 있을 때였다.
박 사장은 2010년 6월 넥스틴을 설립했다. 글로벌 시장의 독과점 품목을 국산화하겠다는 당찬 포부에서다. 노광(포토), 식각(에칭), 박막 증착 등 반도체 전 공정에서 생기는 불량을 검사하는 장비 개발에 나섰다. 웨이퍼의 회로선 두 개가 붙어 있거나 공정 내 파티클(이물질)이 떨어져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웨이퍼를 찾아내는 장비다.
검사장비는 고해상도 사진을 찍는 카메라 광학기술을 이용한다. 넥스틴은 빛 윤곽이 정확하게 나타나지 않는 산란광을 이용해 이미지를 비교하는 ‘암조명검사장비(다크필드툴)’ 시장을 공략했다. KLA-텐코와 히타치가 장악한 분야다. 전 공정 검사장비의 시장 규모는 연간 1조5000억원 수준이며 기술 장벽이 높다.
지구 바깥에서 고해상도 이미지 사진을 찍고 비교하는 첩보위성의 첨단기술이 반도체 검사장비에 활용된다. 세계 6개국이 보유한 첩보위성 기술을 유일하게 민간에 이양하는 나라가 이스라엘이다.
넥스틴은 이스라엘에 기술연구소를 차렸다. 연구소에는 첩보위성 근무자 등 소프트웨어 및 이미지프로세서 엔지니어 8명이 근무하고 있다. 기술을 개발하고 공장에서 시제품을 생산하는 데만 3년간 150억원을 쏟아부었다. 이를 위해 한국투자파트너스(30억원), 산업은행(10억원) 등 9개 기관으로부터 200억원가량을 투자받았다.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기 위해선 웨이퍼 샘플의 이미지를 확보하는 것이 문제였다. 이를 위해 독일 비영리 정부출연기관인 프라운호퍼와도 손을 잡았다. 프라운호퍼는 인피니온 글로벌파운드리 등 독일 반도체 회사의 다양한 샘플 이미지를 보유하고 있다.
2014년 10월 프라운호퍼에 장비를 보내 1년간 성능을 시험한 뒤 2015년 제품(이지스·Aegis)을 개발했다. 그해 SK하이닉스(메모리 분야)의 제품 인증에 이어 지난해에는 삼성전자의 비메모리인 이미지센서(CIS) 분야에서 인증을 받아냈다.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업체)인 메그나칩으로부터 제품 승인도 받았다.
독과점 깬 데 이어 ‘유니콘’ 후보로
넥스틴은 주주 구성이 다양하다. 당초 박 사장이 대주주였으나 반도체 장비업체 AP시스템즈, DE&T 등을 자회사로 둔 APS홀딩스(지분 58.6%)가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신생 벤처기업과의 거래를 기피하는 글로벌 고객(반도체기업)을 안심시키기 위해 지배구조를 안정화한 것이다. 박 사장은 “반도체 회사들이 안정적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장비회사의 시스템과 지배구조를 꼼꼼하게 따진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내외 반도체 시장은 얼어붙었다. 글로벌 반도체기업의 잇따른 투자 연기로 반도체 장비업체들이 ‘돈 가뭄’을 겪고 있다. 넥스틴은 예외다. 중국과 일본 등 해외 거래처와의 제품상담 및 구매계약이 끊이질 않아서다. 올 매출은 지난해(129억원)보다 8.5%가량 증가한 140억원으로 예상된다.
박 사장은 넥스틴을 제조 유니콘으로 키우기 위해 사업을 크게 두 방향으로 다각화하고 있다. 해외 업체 등으로 고객군을 확대한 데 이어 메모리뿐 아니라 비메모리와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분야로 공략 시장을 넓혀가겠다는 전략이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