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정부가 경기 침체와 미·중 무역갈등,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등 대외여건 악화에 대응해 중소기업의 법인세율 인하를 추진한다. 현행 독일의 법인세 최고 세율은 30%를 넘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에서도 가장 높은 수준이지만 이를 대폭 낮추기로 했다. 유럽 최대 경제 대국인 독일은 올해 2분기 성장률이 전 분기 대비 -0.1%를 기록하며 마이너스 성장했다. 3분기에도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되고 있어 독일 정부가 재정지출 확대 가능성에 이어 감세 카드를 꺼내며 부양책에 나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로이터 등에 따르면 피터 알트마이어 독일 경제장관은 29일(현지시간) 중소기업 법인세율 인하를 골자로 하는 중소기업 지원 대책을 발표했다. 알트마이어 장관은 “중소기업은 독일 전체 기업 매출의 35%를 차지하고 일자리의 60%를 담당하기 때문에 중소기업을 부양해야 경제가 살아난다”며 “세금 부담부터 줄일 것”이라고 말했다.
독일의 법인세는 중앙정부가 과세하는 법인세(15%)와 주(州)정부가 걷는 무역세(14~17%), 통일 이후 옛 동독지역을 지원하기 위한 연대세(5.5%)가 포함된다. 최고 37.5%에 이른다. 다만 일부 세 감면 등을 감안했을 때 실효세율은 30~33% 수준이다. 알트마이어 장관은 중소기업 법인세 실효세율을 25%까지 낮추겠다고 밝혔다. 그는 연립정부의 한 축인 사회민주당의 지지를 얻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법인세 구성 항목 중 연대세는 이미 폐지 절차에 들어갔다. 연대세는 독일이 통일 이후 서독과 동독의 경제 격차를 줄이기 위해 1991년 도입했다. 소득세와 법인세로 걷히는 연대세는 도입 초기엔 7.5% 세율로 부과하다가 1995년부터 현재까지 5.5% 세율을 붙여 과세하고 있다. 독일 정부는 이달 각료회의에서 2021년까지 이 제도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기로 했다. 납세자의 90%는 연대세가 전면 면제되고 일부 고소득자에게만 부과될 전망이다.
알트마이어 장관은 민간기업에 세금 상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내놨다. 전체 조세액의 45%까지만 민간기업으로부터 걷자는 제안이다. 반면 기업의 사회복지비용 과세 부담은 점진적으로 줄여 40% 미만까지 낮춰야 한다고 방향을 제시했다. 이날 발표한 대책에는 관료제적인 공공시스템을 개선해 중소기업의 행정 부담을 10억유로(약 1조3000억원) 줄이겠다는 계획도 담겼다.
독일 경제는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에 따른 수출 감소 영향으로 침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 2분기 성장률이 -0.1%를 기록한 데 이어 3분기도 마이너스 성장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는 얘기가 나온다. 독일의 경제지표는 대부분 하향 곡선을 나타내고 있다. 지난 6월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전달 대비 0.1% 줄었고, 산업생산도 전년 동기 대비 5% 감소했다.
독일 정부는 경기 침체 우려가 커지자 재정정책 가능성도 시사했다. 올라프 슐츠 재무장관은 지난 18일 “경기 침체가 이어지면 500억유로(약 67조원)의 추가 지출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유럽중앙은행(ECB)은 통화정책으로 다음달 금리 인하와 대규모 자산 매입 등 부양책 패키지를 발표할 가능성이 있다.
에릭 슈바이처 독일상공회의소 회장은 슈피겔에 “정부의 대책 발표가 시기적절하게 나왔다”며 “경제가 눈에 띄게 식어가고 있는 만큼 행정 유연화, 감세 등 합리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