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베이컨의 우상숭배와 정책

입력 2019-08-26 17:48
수정 2019-08-27 00:02
17세기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은 연역적 연구방법을 비판하면서 경험주의적, 실증적 연구방법을 강조한 인물 중 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인식의 왜곡이 ‘종족의 우상’ ‘동굴의 우상’ ‘시장의 우상’ 그리고 ‘극장의 우상’이라는 네 가지 우상 숭배에 기인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우상들은 인간 그 자체에서 오기도 하고, 인간의 정신적 활동으로 얻어진 지식이나 이론에 의해서 오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종족의 우상은 인간이라는 종족 그 자체에서 발생한다. 최초 인식을 바꾸고 싶지 않은 성향이나 보고 싶은 것만을 보려는 특성 등이 전형적인 예다. 동굴의 우상은 인간의 독특한 경험에서 발생한다. 동굴에 갇힌 인간은 동굴 속에 있는 촛불로 인해 생기는 그림자를 그림자가 아니라 실체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정 집단, 지역 혹은 연령대에 속하면서 특별한 경험을 공동으로 체험한 경우 사람들은 일종의 동굴에 갇힐 수 있고 혹은 인식의 왜곡도 발생할 수 있다.

시장의 우상이란 사람 간 언어를 통한 접촉에서 발생한다. 언어의 불완전성으로 의사소통의 왜곡과 그에 따른 인식 왜곡이 나타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극장의 우상은 학설의 우상이라고도 불린다. 인간들이 축적한 지식이나 이론 혹은 학설이 일반적인 믿음과는 달리 인식 왜곡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베이컨이 우상에 관한 논의를 자세하게 전개한 이유는 올바른 연구와 이를 통한 학문의 진보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닐까. 인간의 태생적 인식 역량의 한계, 독특한 집단적 경험, 언어에 의한 의사소통의 불완전성 그리고 축적된 지식과 이론들이 모두 사실을 왜곡시키는 원인 중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봤다. 즉 다양한 의사결정의 왜곡을 초래할 수 있어 이런 우상들을 경험주의와 실증적 연구 방법으로 제거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현대를 사는 우리에게도 이런 우상들이 아직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다. 허위 정보와 이론이 사실인 양 일정 기간 득세하기도 한다. 도입 취지와는 완전히 다른 결과가 발생하는데도 정책들은 그대로 유지되기도 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불균형 완화를 위한 저소득층 정부 지원 확대에도 불구하고 빈부 격차는 오히려 커지고 있다. 역설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것이 소득불균형의 발생 원인과 처방에 대한 인식 왜곡에서 오는 게 아닌지 규명이 필요해 보인다. 필요하다면 더 과감한 정책 전환도 필요하다. 정책 원인과 처방에 대한 인식 왜곡은 취지와는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