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실리콘밸리의 거침없는 자동차 도전

입력 2017-08-17 15:01
수정 2017-08-20 19:17
-자동차의 중심지, 디트로이트에서 실리콘밸리로 이동-전기와 지능이 이동수단 세상 바꿔

"앞으로 실리콘밸리가 디트로이트 자동차산업에 위협이 될 것이다.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이제는 IT 관광지로 유명해진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에서 만난 자동차부문 스타트업 관계자의 말이다. 이동수단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놓은 구글 웨이모가 자율주행에 대한 사람들의 오랜 꿈을 현실에 밀착시킨 사례라면 테슬라를 비롯한 배터리 전기차의 발전속도는 예상보다 빠르게 전개되고 있어서다.



실제 실리콘밸리의 자동차 도전은 적극적이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 17일(현지 시간) 방문한 구글 본사 옆 컴퓨터역사박물관에는 자동차를 내연기관에 의존하지 않는 지능형 디바이스로 분류하고, 별도 공간을 만들었을 정도다.

구글 웨이모를 비롯한 다양한 컴퓨터회사의 자율주행 노력을 소개한 공간에는 이미 90년 전 자율주행차의 등장을 예언한(?) 미국의 공상과학자 데이비드 헨리 켈러(1880~1966)가 공상과학 매거진 '원더 스토리'에 남긴 1935년의 글이 적혀 있다. 미래 시점을 전제로 쓴 글은 놀라울 만큼 현재를 정확히 꿰뚫고 있다.

"나이든 사람들은 미국 대륙을 횡단할 때 그들의 자동차를 이용했다. 그러나 젊은 사람들은 운전자가 없는 차에 애완견이 타고 이동하는 모습을 보며 놀랐고, 시각장애인도 불편이 없었다. 부모들은 운전자가 있는 낡은 차보다 새로운 (자율주행)차로 아이들을 학교에 안전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런 시작을 알리듯이 박물관 한 곳에는 컴퓨터가 자동차에 들어간 첫 사례도 소개했다. 바로 1978년 벤츠가 내놓은 전자식 ABS다. 지금은 거의 모든 차종에 장착하는 '바퀴잠김방지(Anti-lock brake system)'를 적용한 이후 자동차 전장화가 거침없이 진행됐는데,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치 '컴퓨터없는 자동차'는 앞으로 상상조차 하지 말라는 의미로 다가오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컴퓨터의 발전을 이끌어낸 인텔이나 애플, IBM 등의 선두주자는 이제 모두 자동차산업에 뛰어들고 있다. 이들이 만든 모바일 디바이스와 자동차를 연결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동차를 지배하려는 움직임마저 보인다는 게 박물관 관계자의 설명이다. 박물관 옆 구글 본사에 주차한 여러 대의 기아자동차 쏘울에 안드로이드 표시를 붙인것도 달리 해석하면 지배 움직임의 하나인 셈이다. 이른바 개방형 AVN을 위해 구글 안드로이드 시스템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IT 기업의 자동차 지배 욕심(?)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에너지로 향해 있기도 하다. 150년 이상 지속한 내연기관의 화석연료를 대신해 전기를 동력원 삼아 모터로 구동시키는 행위에 거침이 없는 것. 특히 실리콘밸리 곳곳에 마련한 테슬라의 슈퍼차지 충전 인프라는 앞으로 수송부문의 미래 에너지 전환 가능성을 보여주며 새로운 도전자의 등장을 예고하는 듯 했다.

때마침 국내에 'V2G(Vehicle to Grid)'를 개발했다는 소식이 더해지면서 '탈 것'의 개념 자체가 바뀔 것이란 전망에 힘이 실렸다. 특히 V2G는 전기차 배터리를 움직이는 전지로 활용해 전기가 필요한 다양한 디바이스에 24시간 어느 때나 공급하는 것으로, 추가 발전소 건립을 줄이는 수단으로 각광받고 있다. 전기차 증가에 따른 전력 수요 확대를 적절한 배분으로 극복하자는 움직임이다.



이런 일련의 모든 것들이 이미 실리콘밸리에선 현재진행형이고, 현실에 적극 반영되고 있다.

이 곳에서 만난 스타트업 A사의 한국인 프로그래머 L 씨는 "실리콘밸리는 상상을 현실로 만드는 곳"이라며 "그 중심에는 컴퓨터가 있다"고 말한다.컴퓨터의 진화는 곧 자동차의 진화이고, 이 말에는 자동차를 기계로 보면 볼수록 미래에 뒤진다는 뜻도 담겨 있다. 미국 제조업을 일으켰던 디트로이트의 자동차회사들이 최근 실리콘밸리의 여러 스타트업을 주목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마운틴뷰(미국)=권용주 기자 soo4195@autotimes

▶ 팔 차 없는 포르쉐코리아, '불통' 도마에▶ 이스즈 3.5t 트럭 엘프, 출시 초읽기...가격은?▶ 현대차, 친환경성 극대화한 차세대 FCEV 공개▶ 미니(MINI), 내달 첫 양산형 전기차 공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