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업 대출규모 50조…해운의 25배, 은행들 '충당금 공포'

입력 2016-05-25 06:05
'대우조선해양' 등 조선 3사 대출 채권 대부분 '정상' 분류구조조정 시작되면 은행권 타격 불가피은행 업황 분석 '미비'…정부 '눈치 보기'로 은행권 손실 클 듯



조선업에 대한 구조조정이 다가오면서은행권의 '충당금 공포'가 현실화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은 조선업에 대한 여신을 대부분 '정상'으로 분류해 놓고 있기 때문이다. 부실 여부에 따라 대출 채권의 등급을 낮출 경우 은행들은 막대한 충당금을쌓아야 한다.



이에 따라 1분기에만 3천억원 넘게 충당금을 쌓았던 농협은행을 비롯한 특수·시중은행들은 '충당금 셈법'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우조선해양[042660], 현대중공업[009540], 삼성중공업[010140] 등 조선 3사에대한 은행권 여신은 50조원이 넘는다.



2조 안팎의 여신이 있는 해운사 구조조정과는 달리 조선업 구조조정 후폭풍이은행권 전체로 번질 수 있는 이유다.



◇ 이자도 못 낸 대우조선해양 건전성은 '정상' 25일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위험 노출액(익스포저)은 약 23조원에 달한다.



수출입은행이 12조6천억원으로 가장 많고, 산업은행이 6조3천억원, 농협은행이1조4천억원 등 특수은행이 20조원을 넘는다.



하나은행(8천250억원), 국민은행(6천300억원), 우리은행[000030](4천900억원),신한은행(2천800억원) 등 주요 시중은행의 대출규모도 2조2천억원을 웃돈다.



빚 규모만 23조원에 달하지만 대우조선은 지난 3년 간 영업 활동을 통해 이자비용도 제대로 지불하지 못했다.



이자보상배율이 1미만인 '한계기업'인 것이다. 다시 말해 그동안 빚을 내 은행이자를 낸 셈이다.



이 회사의 무보증 회사채 신용등급도 'BB+'로 투자 부적격 등급을 받았다.



'수주절벽'도 지속되고 있다.



올 1분기 대우조선의 수주량은 16만8천CGT로, 현대삼호중공업(16만9천CGT)보다도 적었다.



이처럼 '경고음'이 잇따랐지만 채권은행들은 대우조선의 여신을 대부분 '정상'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이 대우조선의 대출을 '정상'으로 분류한 데다 비록 빚으로 연명할지라도 대우조선이 이자를 은행 측에 꼬박꼬박 내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시중은행 중에는 유일하게 국민은행만 지난 3월부터 대우조선의 여신을 '요주의'로 분류해 놓고 있다.



◇ 충당금 공포 현실화 '임박' 은행들이 이처럼 대우조선해양 대출 채권에 대해 자산 건전성을 '정상'으로 분류한 건 등급을 낮출 경우 거액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기 때문이다.



여신 건전성은 위험성이 낮은 순서대로 정상→ 요주의→고정→회수 의문→추정손실 등 5단계로 나뉘는데, 부실채권은 고정 이하 여신을 의미한다.



정상은 충당금을 거의 쌓지 않지만 요주의부터는 상당한 충당금을 쌓아야 한다.



요주의는 대출 자산의 7~19%, 고정은 20~49%, 회수의문은 50~99%, 추정손실은대출액의 100%를 충당금으로 쌓아야 한다.



예컨대 대우조선해양을 '정상'에서 '요주의'로만 분류해도 은행권은 1조6천억원에서 4조3천억원의 충당금을 더 쌓아야 한다.



특히 여신의 대부분이 몰린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많게는 3조원이 넘는 금액을 충당금으로 적립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은행들은 조선업계의 업황이 형편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충당금을 쌓을 돈이 없어 등급조정을 못한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 채권은행 관계자는 "거액의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이대우조선해양에 대한 여신등급을 하향하는 건 큰 부담이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채권은행 관계자는 "좀비기업이라지만 대우조선해양은 은행 이자를 정상적으로 내는 데다가 주채권은행이 '정상'으로 분류하고 있기에 우리만 낮출 수는없었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구조조정 위기에 내몰린 현대중공업이나 삼성중공업에 대한 여신도 같은 이유로 '정상'으로 분류해 놓고 있다.



현대중공업에 대한 은행권의 대출규모는 17조4천억원, 삼성중공업은 14조4천억원에 달한다.



따라서 이들 기업이 법정관리 등으로 치달아 대출 채권이 부실화하면, 최악의경우 30조원이 넘는 부실이 생길 수 있다.



은행들이 안이하게 대출 관리를 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 은행권 업황 분석 실패…당국 눈치 보기도 작용 금융감독원의 자산 건전성 분류업무 해설 자료를 보면 "은행은 보유여신에 대해미래의 손실액을 추정하고, 이런 추정액만큼 대손충당금으로 설정함으로써 보유자산의 건전성을 보다 정확하게 표시"하도록 명문화하고 있다.



즉, 기업의 경영 내용, 재무상태와 미래 현금흐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채무상환능력을 꼼꼼하게 평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시중은행이 연체율 등 단순 지표만 들여다보고, 현금 흐름이나업황에 대한 분석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오정근 건국대 특임교수는 "조선업은 1년이라도 업황을 내다보고 글로벌 경제동향을 알아야 하는데, 은행들이 조선업에 대한 충분한 연구 분석을 못 했을 수도있다"고 말했다.



또 "은행의 성과주의 체제 때문에 안 했을 수도 있고,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을 가능성도 있다"며 "중요한 건 기업이 이렇게 망가졌는데도 제대로 평가 못한것에 대해서는 확실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에 대한 눈치 보기 때문이라는 시각도 있다.



손상호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작은 회사라면 은행들이 진작에 여신등급을낮췄을 터지만 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여신등급 조정을 미뤘을 것"이라며 "현실적으로 대우조선해양 같은 대기업의 여신은 은행들이 함부로 결정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2분기에도 충당금 속속 늘어날 듯 시중은행들은 올해 2분기에도 조선·해운업과 관련해 거액의 충당금을 쌓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은 대우조선해양을 '요주의'로 분류해 조선사에만 1천억원을 쌓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사를 포함한 충당금 규모는 약 1천500억원 정도 규모가 될 것으로 관측된다.



지난 1분기에만 해운·조선사 등에 3천328억원의 충당금을 쌓은 농협은행은 2분기에도 거액의 충당금을 쌓을 가능성이 상당하다.



STX조선이 만약 법정관리를 간다면 약 7천억원 상당의 추가 충당금을 쌓아야 하는 데다가 대우조선해양 여신을 '요주의'로 낮추면, 최하 1천억원 상당을 추가로 적립해야 한다.



국민은행, KEB하나은행, 신한은행도 관련 충당금을 규정에 따라 충당할 예정이어서 리스크관리는 당분간 은행권의 화두로 떠오를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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