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열 한은 총재의 고민 "경제 이론이 안 먹히네"

입력 2015-12-28 10:31
"금리를 내려도 소비가 늘지 않고, 고용과 물가의 관계는 점차 약해지고…" 한국 경제가 저성장·저물가 시대로 접어들었다는 진단이 나오는 가운데 통화정책을 이끌고 있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경제학 이론에 따른 인과관계가 현실에선 적용되지 않는 현상이 빈번해지면서통화정책의 효과가 덩달아 반감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최근 기자단 송년회에서 "경제변수들 간의 인과관계가 과거에 비해많이 흐트러졌다"면서 "우리가 그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던 경제이론도 이제 재검증해야 하지 않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가 거론한 '흐트러진' 사례 중 대표적인 것은 약발이 떨어진 기준금리 조정효과다.



한국은행은 침체 양상을 보이는 경기를 살리기 위해 지난해 8월부터 올 6월까지4차례에 걸쳐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총 1%포인트나 내렸다.



그 결과로 기준금리는 사상 최저 수준인 연 1.5%로 떨어졌다.



기준금리를 내리면 가계나 기업의 이자비용이 줄고 소득이 늘어나는 효과를 가져와 결과적으로 소비가 늘고 물가는 오른다고 보는 것이 기존 상식이었다.



하지만 국내 물가는 기준금리 인하에도 불구하고 소비자물가 상승률 기준으로지속적인 하락세를 보였다.



2011년 4.0%였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12년 2.2%, 2013년 1.3%로 떨어졌다.



작년에도 1.3%에 머물렀다.



올 들어선 월별 상승률이 0%대를 벗어나지 못하다가 정부의 소비진작 정책에 힘입어 11월에 간신히 1%대로 올라섰다.



이와 관련해 이 총재는 "최근 한 여론조사에서 금리가 내렸으니 소비를 늘리겠느냐고 물었는데 오히려 줄이겠다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결과가 나왔다"면서 경제변수들 간의 인과관계가 흐트러진 것에 대해 곤혹스러운 입장을 피력했다.



실업률이 낮을수록 인플레이션이나 임금상승률이 높아지는 등 양자 사이에 역의함수관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필립스곡선도 한국 경제에선 타당성이 의심받는 상황이됐다.



고용이 늘어도 물가가 오르지 않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총재는 "(실업률과 임금상승률의 상관관계가 약해지는) 필립스곡선의 평탄화현상도 한 예가 될 수 있을 것"이라며 "이제는 경제주체들이 기존 경제이론과는 다른 방향으로 행동하는 일이 빈번해지고 있다"고 진단했다.



저유가 추세가 원유를 전량 수입해 쓰는 우리 경제에 혜택을 주기보다 부작용만키우고 있는 것도 통념을 깨는 현상이다.



국제유가 하락세가 과거 저유가 시절처럼 경기부양 효과로 이어지지 않고 수출부진과 교역 감소를 초래하는 악재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글로벌화가 진전되면서 한 나라의 사건이나 정책이 다른 나라에 미치는 영향이커진 점이 적절한 통화정책을 구사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꼽힌다.



작년의 세월호 사건이나 올해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처럼 예기치 못한돌발 변수로 경기가 갑자기 큰 타격을 받는 상황도 정책결정을 어렵게 하는 원인으로 지목된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인구구조의 급격한 변화도 전통적인 경제이론이 현실에딱 들어맞지 않게 하는 요인으로 거론된다.



경제 여건에 영향을 미치는 변수들이 워낙 많다보니 통화정책의 기반이 되는 전망을 제대로 하기가 어려워지고 그 영향으로 시장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정책을 펴는 것이 큰 과제로 떠오른 것이다.



이 총재는 1974년부터 5년간 영국 재무장관을 지낸 데니스 힐리의 발언을 인용해 불확실한 경제상황을 진단하고 예측해 정책을 펴는 데 따르는 고충을 토로했다.



"(경제전망은) 부분적으로밖에 알려지지 않은 과거로부터(Partially known past)알려지지 않은 현재를 통해(unknown present) 알래야 알 수 없는 미래(unknowable future)를 추정하는 것이다." hoonkim@yna.co.kr(끝)<저 작 권 자(c)연 합 뉴 스. 무 단 전 재-재 배 포 금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