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단돈 16원…피해자 "이젠 화낼 기력없어">

입력 2014-01-28 06:09
분노하는 개인정보 유출 당사자, 결국은 '체념'



인터넷에서 개인정보 데이터베이스(DB) 중개업자만 찾으면 누구나 대량의 개인정보를 살 수 있다는점은 정보가 곧 '돈'인 정보화시대의 씁쓸한 단면을 나타낸다.



특히 중개업자들은 해킹으로 보안이 취약한 대부업체 또는 영세 저축은행 등의서버를 '털고' 이를 정기적으로 업데이트까지 해 DB를 찾는 고객에게 판매한다.



개인정보 유출 피해를 본 이들은 대부분 화가 나거나 당황스럽다는 반응이었지만 거듭된 대출권유 전화 등에 지친 일부 피해자들은 별스럽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유출 정보 업데이트에 A/S까지…"잘 털어드릴게요" DB 중개업자의 연락처나 메신저 아이디 등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보면 개인정보를 사고 파는 일에 전혀 경험이 없는 일반인도 구할 수 있다.



이들은 중국을 통해 최신 DB를 들여오거나 보안이 취약한 영세 업체의 내부망을해킹해 DB를 모은다고 설명했다.



28일 연합뉴스가 접촉한 한 DB 중개업자는 특정 직업군과 관련된 대출 DB를 구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요즘 대출DB 구하기 쉽지 않아 시간이 좀 걸린다"며 "한 번털렸던 곳은 재작업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시간을 며칠만 주면 적지 않은 양의 DB를 구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다른 DB 중개업자는 "중국을 통해 (DB를) 계속 받아오고 있어서 깨끗하다(다른곳에 많이 유출되지 않았다)"며 "원하면 샘플을 보내주겠다"고 설명했다.



고객이 원하는 '맞춤형' DB도 마련해준다.



다른 DB 중개업자는 "통 DB(전화번호·주민등록 번호 등 특정 항목을 위주로 정리한 DB가 아닌 여러 항목을 포함한 DB)를 갖고 있어서 연령별·거주지별로 소팅(데이터 재배열)해줄 수 있다"며 1천건의 DB를 5만원에 주겠다고 귀띔했다.



또 다른 DB 중개업자는 DB 정보가 확실하지 않을 경우 A/S(사후보장 서비스)를해주겠다며 5만원을 받고 한나절 만에 3천여건의 정보가 빼곡히 들어차 있는 파일을넘겨줬다. 건당 16원 꼴이다.



◇건당 수십원에 팔리는 내 정보…피해자 '분노' 혹은 '체념' 이렇게 거래되는 개인정보들은 말 그대로 '헐값'에 인터넷 상을 떠돌아다닌다.



이달 초 창원지검이 구속한 코리아크레딧뷰로(KCB) 직원 박모(39)씨 사례를 보더라도 카드 3사에서 빼돌린 신용정보 1억400만건 중 7천800만건이 대출광고업자 조모(36)씨에게 1천650만원에 넘어갔다. 건당 0.21원 수준이다.



연합뉴스가 중개업자를 통해 입수한 자료에도 이런 개인정보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명단에 이름이 올라 있는 정보유출 피해자 30여명에게 전화하자 전화가 연결된10여명 대부분은 본인의 정보가 맞다고 대답했다.



이름과 전화번호는 물론 주민등록번호 13자리와 직장까지 유출된 것을 안 피해자들은 매우 불쾌해하거나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시중에 나도는 신용불량자 DB에 본인의 이름이 있다는 소리를 들은 M(53)씨는 "내가 신용불량자인 것도 맞고 주민등록번호도 일치한다. 너무 황당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개인정보 유출이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이로 인해 대출권유 전화나 스팸 문자가 오는 것도 일상적이어서 더 화낼 기력조차 없다는 반응도 적지 않았다.



K(47)씨는 "예전에 대출을 한 번 받았었는데 그 이후로 대출광고 전화가 계속 왔다"며 "이젠 모르는 번호로 오는 전화는 웬만하면 받지 않는다. 금융감독원같은 곳에 따로 (스팸문자·광고전화 등을) 신고해본 적도 없다"고 말했다.



R(21)씨는 "워낙 예전부터 대출·광고 문자나 전화가 많이 와서 이젠 익숙해졌다"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이야기했다.



◇전문가들 "법제화로 불법행위 근절해야" 전문가들은 이렇게 개인정보가 본인도 모르는 사이에 거래되는 것을 막으려면제도를 먼저 정비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실제로 개인정보 불법유통과 활용의 한 축으로 지적된 '대출모집인'은 정식으로등록된 인원만 1만6천명에 이르지만 관련 규정이 법에 명시돼 있지 않다.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대출모집인과 관련된 모범규준을 만들었지만 법제화가 안돼 제재는 불가능하다"며 "직접 제재할 수 없기 때문에 금융사를 통해 간접적으로관리감독만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대출모집인에 관한 규정이 포함된 금융소비자보호법은 여야간 이견으로 현재 국회에 계류중이다.



한국대출상담사협회 전광석 대표는 "제2금융권의 신용대출 시장에서는 유출된정보로 영업하는 경우도 있지만 소수다"라고 설명하며 "제도를 보완해 단 한 건이라도 불법적인 영업행위가 일어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당국이 최근 문자와 전화를 이용한 대출모집 마케팅을 한시적으로 중단한 것처럼 범정부 차원의 제도 정비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정보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불법적인 정보 취득은 필연적인 측면이 있다"며 "그야말로 '능력껏' 하다보니 불법을 저지르게 되는 것"이라고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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