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자사고도 폐지 '역주행'
4차 산업혁명 물길 끊고 있어
오정근 < 한국금융ICT융합학회장 >
![](https://img.hankyung.com/photo/201906/AA.19964498.1.jpg)
실리콘밸리의 중소형 아파트 거주자도 대개는 인도, 중국인들이다. 본국 대학을 졸업한 이들은 그야말로 노트북 하나 들고 실리콘밸리로 몰려들어 햄버거를 먹으면서 3~4년 일과 개발에 몰두한다. 혁신 제품·서비스 개발에 성공해 구글, 애플 등 거대 IT기업에 인수합병(M&A)돼 일확천금을 손에 넣거나 거대 IT기업에 다니는 것이 이들의 꿈이다. 현재 구글의 최고경영자(CEO)도 인도인이다. 이렇게 실리콘밸리에서 경험을 쌓은 청년들은 귀국해서 조국의 첨단산업 발전을 선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한국 청년들은 가물에 콩 나듯 드물다. 간혹 보이는 한국 청년들은 미국에서 공부한 청년이기 십상이다. 40여 년 하향평준화 교육 탓에 미적분도 모르는 실력으로는 인공지능(AI) 등 새로운 첨단산업 분야에 적응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국의 한 IT기업 대표는 한국의 일류대학을 나온 공학도도 첨단 기술분야는 힘들어 해 대개는 범용기술 분야로 밀리는데 몇 년 후면 자연히 영업부서로 나가게 된다고 실토했다. 한국 청년들은 일도 하면서 영어도 배운다는 호주 등지의 워킹홀리데이로 해외에 많이 나가는데 대개는 식당 등에서 허드렛일을 할 뿐이다.
무엇이 한국 청년들을 이렇게 만들었나. 40여 년의 하향평준화 교육 탓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우수 고교를 없애고 우열반도 편성 못 하게 해 이미 수학을 포기한 ‘수포자’가 한 학급에서 절반이 넘는다는 공교육이 만들어 놓은 결과다.
세계경제포럼은 ‘교육을 위한 새로운 비전’에서 “21세기 혁신성장을 이끄는 핵심 경쟁력은 인재”라고 결론짓고 있다. 주요 선진국에선 과학·기술·공학·수학의 머리글자를 딴 ‘STEM 교육’ 열풍이 불고 있다. 1인당 소득을 높이려면 고임금을 주고도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첨단기술과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으로 발전해가야 한다. 그러려면 우수인재가 필요하고, 우수인재를 양성할 수 있는 수월성 교육이 필수적이다. 미국 실리콘밸리, 영국 테크유케이, 스위스 주크 등 첨단 산업클러스터에 명문대학들이 같이 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니다.
한국은 오랜 하향평준화 교육과 갖은 규제로 공교육이 황폐화된 지 오래다. 교육부의 학업성취도 조사결과를 보면 2015~2016년에 5% 안팎이던 수학 기초학력 미달 비율이 2017년부터 급등해 2018년에는 11%까지 치솟았다. 기초과학 경쟁력은 중국의 80% 수준이고, 세계 초등로봇대회에서 중국은 2위, 한국은 122위라는 충격적인 결과도 나오고 있다. 세계경제포럼이 평가한 대학 경쟁력은 2010년 15위에서 2018년에는 27위로 해마다 추락하고 있다.
그 결과는 4차 산업혁명을 이끌 우수인재의 부족이다. AI 분야에서 인재 1만여 명이 부족하다고 하고 블록체인, 빅데이터 등 소프트웨어 우수인력 부족도 마찬가지다. 한국이 세계적 수준의 정보통신기술(ICT)산업이란 하드웨어에도 불구하고 4차 산업혁명 흐름에서 뒤처지고 있는 이유다.
그나마 민간이 투자해 우수인재를 배출해 온 전주 상산고 등 자율형 사립고(자사고)를 폐지하는 수순을 밟고 있다는 소식까지 들린다. 누군가 실력을 길러 앞서 나가는 것은 두고 볼 수 없다는 이념편향의 교육정책 아닌가. 우수인재가 절실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절망감을 금할 수 없다. 세계와 경쟁할 수 있는 청년들을 더 많이 길러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