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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자 칼럼] 동동구리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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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LG그룹이 올해 창립 70주년을 맞는다. LG그룹의 구인회 창업주가 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를 세운 것은 1947년 1월5일이었다.

락희화학의 첫 제품은 여성용 화장품 크림이었다. 크림을 당시엔 ‘동동구리무’라고 불렀는데 행상들이 북을 두 번 ‘동동’ 치고 크림의 일본식 발음인 ‘구리무’를 외쳤기 때문에 이런 이름이 붙었다. 고향인 진주에서 부산으로 진출한 구인회와 동생 구정회는 우연한 기회에 화장품 크림을 접한다. 구정회가 자주 다니던 당구장에서 흥아화학 화장품 기술자인 김준환을 만난 것이다. 흥아화학에서 만드는 ‘아마쓰크리무’를 받아와서 서울 종로에서 팔았는데 제법 재미를 봤다.

1931년 ‘구인회포목상점’을 열어 이미 16년의 장사경험을 쌓은 구인회는 이때 큰 결단을 내린다. 김준환을 스카우트해 부산 서대신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 공장을 차렸다. 상표명은 구정회가 제안했다.“럭키(lucky)는 행운의 뜻도 있고 우리말로 음역하면 락희(樂喜)로 즐겁고 기쁘다는 뜻도 된다”며 ‘럭키크림’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외제 화장품을 좋아하는 여성들의 취향을 고려해 영화 ‘오케스트라의 소녀’에 나오는 여배우 디아나 다빈의 사진을 크림용기에 붙였다. 대성공이었다. 다른 회사보다 두 배 가격인 1다스에 1000원에 내놨는데도 날개 돋친 듯 팔렸다. “럭키크림의 향긋한 향기는 밀수품”이란 헛소문이 돌 정도였다.

위기도 있었다. 너무 잘 팔려 원료인 글리세린이 동났는데 아무리 구해도 찾을 길이 없었다. 당시의 일화. 부산 시내 곳곳을 돌며 글리세린을 찾아다니다 밥까지 굶은 구인회가 우연히 만난 고향 지인과 함께 설렁탕집에 들어갔다. 당시 창고관리인으로 일하던 그 지인에게 혹시 글리세린을 구할 방법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그는 “글리세린? 우리 창고에 열여섯 드럼이나 있는데!” 하더라는 것이다.

위기를 극복하면 기회도 생긴다. 크림통이 약해 운반 과정에서 자꾸 깨지는 문제가 있었다.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크림통을 구해 분석에 분석을 거듭했다. 그것이 플라스틱이고 기계와 원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제품을 만들 수 있다는 걸 알게 됐다.

구인회는 플라스틱의 가능성을 보고 락희화학에서 번 돈 3억원에다 2억원을 추가로 마련해 플라스틱공장을 세웠다. 머리빗과 머리핀이 히트를 쳤고 훌라후프로 떼돈을 벌었다. 화학산업으로 진출하게 된 순간이었다. ‘동동구리무에서 올레드TV까지’로 요약되는 한국 3대 그룹 LG의 역사는 그렇게 시작됐다.

권영설 논설위원 yskw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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