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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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法不外人情(법도 인정을 도외시하지는 않는다). 인정 역시 관시의 유무 또는 원근과 절대적으로 관련이 있다. 한편 논어에서는 정직(正直)에 대해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숨겨주고, 아들은 아버지의 잘못을 가리는 것(父爲子隱子爲父隱)”이라고 말했다. 정직의 개념 역시 관시에 따라 달라진다.
(2) 배타성
모 학자는 제한된 자원의 공정한 분배에 대해 서양이나 중국이 고민하기는 매한가지이지만 그 자원의 정의가 다르다고 한다. 즉, 서양은 물질의 분배를 중시하는 반면 중국은 감정의 분배를 중시한다. 아는 이와 모르는 이에게 같은 분량의 감정을 주는 것은 중국 식의 공정한 분배가 아니다. 그러다 보니 이런 말도 있다. “성경의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을 들은 중국인들은 아마도 깊은 고민에 빠질 것이다. “원수에게도 사랑을 줘야 한다면, 그렇다면 나와 친한 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엇을 얼마나 ‘더’ 줘야 할까?”
차별적인 감정의 배분은 결국 물질의 차별적인 배분으로 이어진다. 미운 이에게 떡 하나 더 주라는 우리의 관념과 다르다. 肥水不流外人田(모르는 사람의 논에 물을 대주지 않는다). 좋은 것은 관시가 있는 ‘우리끼리’ 나눈다는 것이다.
(3) 시간성
시간성이라 함은 오랜 시간과 잦은 시간을 함께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국 친구들로부터 잦은 불만을 듣는다 “너희 한국 회사(사람)는 일 있을 때는 뭐든 다 해준다고 답해 놓고는, 일이 되고 나면 모르는 체한다….” 솔직히 나도 그런 경우를 겪은 적이 적지 않다. 우리끼리라면 우리나라식으로 그럭저럭 넘어갈 수 있었지만 중국은 다르다. ‘평소에는 불공을 드리지 않다가, 일이 닥치면 그때서야 부처님 발을 잡고 사정하는(平時不燒香臨時抱佛脚)’ 이들을 중국 사람들은 매우 혐오한다. 평소에 자주 보고 또 잘해야 한다. 路遼知馬力,日久知人心(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 수 있고, 세월이 오래돼야 사람의 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좋은 제품(또는 기술)을 가지고 사업을 위해 중국에 갓 온 사람들은 “이번에 정말 좋은 친구를 만났다”며 흥분한다. 경험상 이런 식으로 만난 중국 친구와 좋은 결과를 맺는 경우를 별로 본 적이 없다. 단번에 만나 친구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인 상대방이 운명적으로 만난 것처럼 반가워하는 경우라도 일단 사업을 위한 겉모습인 경우가 많다. 한편 믿을 만한 친구 소개로 연결되는 경우라면 중간에서 다리가 됐던 사람이 ‘관시를 빌려주었기’ 때문이다(관시의 교환성은 다음 편에 소개한다). 숙성된 시간 없이 단 한 번 운명적으로 만나서 성공의 파트너가 되는 영화 같은 스토리는 영화에나 있는 것이다.
중국에서 사업하려는 분들에게 이런 충고를 자주 한다. “사업으로 만나는 친구는 (그 말이 아무리 그럴듯해도) 일단 의심하고, 친구가 돼 사업을 하게 되면 (우리식으로는 의심이 돼도) 일단 믿어보라!” 중국에서의 친구는 오랜 시간을 통해 검증되고 숙성되는 프로세스가 필수적임을 기억해야 한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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