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경제부총리한테 '정책 제언집' 전한 대한상의
(서울=연합뉴스) 김동연 경제부총리가 16일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과 가진 간담회는 여러 가지로 눈길을 끌었다. 박 회장은 이날 기업인들의 자성과 분발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정부 정책의 맹점을 꼬집는 '소신 발언'도 적지 않게 했다. 하지만 김 부총리는 "전적으로 공감한다. 경제계의 제언을 정책에 최대한 반영하겠다"며 박 회장을 예우했다. 그래서인지 간담회 분위기는 시종 화기애애했다. 원래 이 자리는 박 회장이 김 부총리에게 '최근 경제현안에 대한 전문가 제언집'을 전달하기 위해 마련한 것이다. 기업인들의 애로사항과 전문가 50여 명의 견해를 모아 만든 제언집이라고 한다. 상의는 경제 현장의 목소리를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합리적 해법을 찾기 위해 학계, 컨설팅사, 시민단체 등을 폭넓게 자문한 것으로 전해졌다. 기업 민원을 모아 '소원 수리' 형식으로 정부에 건의했던 기존 관행을 탈피했다는 점에서 일단 신선한 시도로 평가된다.
이 제언집은 ▲경기 하방 리스크 ▲ 산업의 미래 ▲ 고용노동 부문 선진화 ▲기업의 사회 공공성 강화 등 4개 부문으로 구성됐다. 제언집은 "역대 정부에서 기업의 양극화 해소 대책을 폈지만, 중소기업 지원에만 국한해 기업의 역량 강화와 성장으로 연결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제언집은 이어 "다수의 정부 정책이 늙은 기업의 연명을 돕도록 설계돼 있다"면서 "잠재력이 높은 어린 기업이 성장궤도에 들어가도록 정책구조를 바꾸고, 재도전이 가능한 사회 안전망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동환경과 관련해서는 "저임금, 장시간 근로에 의존하는 구시대적 관행을 걷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업의 사회 공공성에 대해서는 "정부가 시장 자율성과 사회 공공성을 대립적 관계로 규정해 시장에 무리하게 개입하면 자율성과 공공성을 모두 잃고 그에 따른 비용은 국민에게 전가된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기업도 시장경제 질서를 준수하고 공정한 분배를 해왔는지 돌아보면서 기업 친화적 문화를 주도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제언집에는 "경제계가 그동안 10~20년 후 미래 성장을 얘기하기보다 '기업애로가 많으니 해결해 주세요'라는 식으로 기업을 연명한 것이 아니었는지 반성한다"는 내용도 있다.
현 정부 들어 전경련과 경총은 최순실 국정농단 등의 여파로 크게 위축돼 있다. 대신 상의가 기업의 대정부 창구 역할을 하는 게 현실이다. 상의의 이번 제언집은 준비 과정이나 내용 구성을 볼 때 상당히 공을 들인 게 분명하다. 정부에 원하는 것들을 주로 나열했던 기존 형식에서 벗어나, 스스로 반성하고 변화해야 할 문제도 적지 않게 반영했다. 그런 맥락에서 정부의 개혁 요구에 응답한 것으로 평가할 여지도 있다. 기업인들이 이렇게 달라질 테니 정부도 기업을 옥죄는 규제를 풀어달라는 메시지인 셈이다. 박 회장이 "중요한 것은 성장이다. 혁신과 성장을 이끌 현실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 대목이 그런 의미에서 주목된다. 중요한 건 향후 정부의 대응이다. 김 부총리의 '화답'이 경제계 원로에 대한 형식적 예우에 그치지 말기 바란다. 제언집 내용 중 경제 회복기에 노동시장을 개혁해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대목은 최근 IMF가 정부에 권고한 것과 일치한다. 그 밖에도 각계 전문가의 진단이 망라된 만큼 정부가 참고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다. 기업인들도 정부만 쳐다보지 말고 잘못된 관행을 찾아 스스로 개혁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이렇게 해야 정부와 기업이 손을 잡고 우리 경제의 성장 동력을 찾아가는 선순환이 시작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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