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밭고랑 헤집어봤자 쓸모없는 감자뿐…수확량도 반토막"
성장 못한 잔챙이 수확해도 제값 못받아…산지 농민 '한숨'
메마른 땅 비료조차 녹지 않아…관수 시설 없어 피해 확산
(옥천=연합뉴스) 박병기 기자 = "20년 넘게 감자 농사를 짓지만, 올해 같은 경우는 처음입니다. 바싹 말라붙은 밭고랑을 아무리 헤집어봤자 쓸만한 감자 구경하기가 힘들어요"
충북 옥천군 안내면 현리에서 3천여㎡의 감자 농사를 짓는 이승재(54)씨는 30도를 웃도는, 이른 폭염이 기승을 부리던 지난 22일 오후 뙤약볕 아래서 마른 먼지가 풀풀 날리는 감자밭을 파 일구며 한숨을 토해냈다.
예전에는 밭고랑을 조금만 들춰도 어른 주먹만 한 감자가 줄줄 쏟아져나왔는데, 올해는 혹독한 가뭄 탓에 작황이 형편없다.
이날 이씨의 밭에서 거둔 감자는 20㎏짜리 310상자. 작년 600상자를 캤던 것에 비하면 수확량이 절반으로 뚝 떨어졌다.
물기 사라진 땅에서 감자가 제대로 알을 맺지 못했고, 가까스로 알 맺은 감자도 절반 정도만 자란 상태에서 성장이 멎었다.
감자는 굵기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최근 농산물도매시장의 감자 경락가격도 1상자(20㎏)당 7천∼3만원대로 천차만별이다.
200g 넘게 무게 나가는 굵은 감자는 3만∼3만2천원씩 팔린 반면, 100∼150g짜리 중간 사이즈는 1만5천원을 밑돈다. 100g에도 못 미치는 잔챙이는 반찬용으로 7천∼8천원씩 나간다.
이씨는 "작년에는 A급 굵은 감자가 절반 넘었는데, 올해는 중간 사이즈와 잔챙이가 대부분"이라며 "도랑 물까지 끌어다대면서 힘들게 지은 농사인데, 기운이 빠진다"고 하소연했다.
인근의 강광수(67)씨 감자밭 상황도 별반 다르지 않다.
농수로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그의 밭은 오랫동안 물 구경을 못해 감자 줄기가 폭격을 맞은 것처럼 군데군데 말라 죽었다. 살아남은 줄기도 누렇게 타들어 가면서 생기를 잃은 상태다.
강씨는 "가뭄이 얼마나 혹독한지 한 달 전 웃거름으로 뿌려준 비료가 녹지 않고 밭고랑에 그대로 남아 있을 정도"라며 "비료조차 녹지 않는 메마른 밭에서 무슨 수로 감자가 자라겠느냐"고 혀를 내둘렀다.
그는 작년 이 밭에서 500상자의 감자를 생산해 400만원이 넘는 돈을 손에 쥐었다. 씨감자 파종 뒤 석 달 만에 거둬들이는 농사치고는 제법 쏠쏠한 수입이었다.
그는 해마다 감자를 캐낸 밭에 메주콩을 심는 이모작 농사를 짓는다. 그러나 올해는 콩 파종은 고사하고, 상품성 잃은 감자의 처분을 놓고도 고민이 깊다.
강씨는 "기껏해야 달걀 크기인 감자는 애써 수확해도 인건비조차 건지기 어렵다"며 "알 굵은 감자만 골라내 출하한 뒤 잔챙이를 이웃이나 친지에게 나눠줘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돈도 안 되는 작업에 기운 빼느니 주변에 인심이나 쓰겠다는 얘기다.
이 지역은 충북에서 손꼽히는 감자 산지 중 한 곳이다. 200여 가구가 25㏊의 감자 농사를 짓는 데, 절기상 하지(夏至)가 되면 일제히 수확에 나서 농협을 통해 출하한다. 장마가 시작되기 전 수확하는 '하지 감자'다.
지난해 이 지역 대청농협의 감자 출하량은 500t에 달했다. 그러나 최악의 가뭄이 이어지는 올해 출하량은 30% 가까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대청농협 한영수 조합장은 "지난 주말부터 감자 수매를 시작했는데, 하루 들어오는 물량이 작년의 70% 선에 그치고 알 굵은 감자가 없어 시세도 형편없다"며 "다음 달 15∼16일 축제를 열 계획인데, 행사에 쓸 물량이나 충분히 나올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올해 이 지역에는 151㎜의 비가 내렸다. 작년 강수량(349㎜)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적은 양이다. 지난달 이후로는 두 달 가까이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으면서 밭작물을 중심으로 가뭄 피해도 확산되는 상황이다.
당국은 예비비 등 4억원을 풀어 관정개발에 나서는 등 한해 대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사업이 규모 큰 과수원이나 시설채소 재배장 위주로 이뤄지고 있어 감자·옥수수·콩 등을 재배하는 소규모 농가는 별다른 혜택을 보지 못한다.
한 조합장은 "감자나 옥수수밭은 관수시설을 갖춘 곳이 드물어 가뭄이 길어질수록 피해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고 설명했다.
bgipark@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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