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 연동제 왜 도입했나?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한전의 적자는 쌓여 갔다. 정부가 ‘탈원전·탈석탄’ 정책을 추진하면서, 발전단가가 싼 원전과 석탄발전을 줄이고 발전단가가 비싼 ‘액화천연가스(LNG)’ 발전과 신재생에너지를 늘렸기 때문이다. 특히 LNG는 유가의 영향을 직접적으로 받아서 한전의 재무건전성 악화의 주범이 됐다. 이에 정부와 한전은 작년 12월 올해부터 전기료를 연료비에 연동해 책정하는 연료비 연동제를 도입한다고 발표했다. 기존 요금 체계는 유가 등의 원가 변동분을 적시에 요금에 반영할 수 없었다. 2013년 11월 이후 전기료가 인상되지 않았던 이유다. 또 기후변화 관련 비용도 명확하지 않았다. 연료비 연동제는 이런 점을 개선해 연료비조정요금과 기후환경요금을 분리해 전기료에 반영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한전은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2조원대 적자를 기록했다. 이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정책의 영향이다. LNG와 신재생에너지가 늘어나면서 한전의 전력구입비가 크게 증가한 것이다. 정부 출범 이전인 2016년 한전이 발전회사들로부터 사들인 전력구입비는 41조717억원이었다. 그런데 2년 만인 2018년 전력구입비가 49조9158억원까지 치솟았다. 이는 LNG전력거래량이 같은 기간 11만8552GWh에서 15만473GWh로 증가한 게 큰 영향을 미쳤다. 이 기간 LNG 전력구입비만 약 3조4500억원 가량 늘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정부의 에너지전환 정책 때문에 2024년 이후에는 LNG 비중 증가 등으로 발전비용은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는 한전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다는 의미다.
정부는 발전비 증가를 전기료에 반영하는 가격 결정구조를 만드는 선택을 했다. 그 핵심이 연료비 연동제였다. 새로운 요금체계는 기준연료비(직전 1년간 평균연료비)에서 실적연료비(직전 3개월 평균연료비)의 차액에 사용전력량을 곱해서 연료비 조정단가를 산출한다. 전기료의 기준이 되는 연료비 조정단가는 1개월 예고 후 3개월 단위로 반영한다. 연료비 변동분이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되는 것이다. 이는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소비자 예측 가능성을 줄인다는 의미도 내포돼 있다. 유가가 올라가면 소비자들이 그만큼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도록 유도할 수 있다는 의미다.
특히 정부는 올해를 연료비연동제 시행의 적기로 판단했다. 가격 저항을 불러올 수 있는 전기료 인상을 막으면서 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는 뜻이다. 그도 그럴것이 정책 발표 시점만 해도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수요 감소로 에너지 가격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 정부는 연료비연동제를 발표하면서, 1분기에는 ㎾h당 3원, 2분기에는 ㎾h당 2원을 깎아줘 상반기에만 1조원의 전기료 부담을 덜어주도록 하겠다는 계획까지 제시했다.
하지만 올 1월 말부터 유가가 급등세로 바뀌었다.전기료 인하를 통해서 연료비 연동제를 연착륙 시키려던 정부 구상도 어그러졌다. 2분기 전기료는 2019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평균 연료비를 기준으로 2020년 12월부터 올해 2월까지 평균 연료비가 얼마나 높거나 낮았는지를 기준으로 인상 또는 인하가 결정된다. 정부는 작년 12월 올 2분기 연료비를 추계하며서 올 상반기 유가를 배럴당 44달러 안팎에 머물 것으로 예상했다. 하반기에도 배럴당 48달러 선을 유지해 전기료 인상은 내년 이후에나 가능하다는 게 정부의 판단이었다.
하지만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작년 말 배럴당 49달러 안팎이던 유가는 2월 말 60달러 선까지 치솟았다. 이를 기준으로 2분기 전기료를 계산하면 1분기와 비교해 kwh당 2.8원이 인상되어야 했다. 1분기 전기료 감면폭을 상쇄하고, 지난해 말 수준으로 전기료가 인상될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2분기 전기료를 동결하기로 결정했다.
연료비 연동제 유지될까?
정부는 유가와 LNG 가격 인상 영향을 2분기 전기료 산정과정에서 제외하면서 ‘단기간 내 유가 급상승 등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하면 정부가 요금 조정을 유보할 수 있다’는 조항을 근거로 내세웠다. 최근 유가 상승은 미국 한파 등의 영향으로 발생한 일시적 상황임을 감안해 전기료에 곧바로 반영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최근 국내외를 막론하고 높아지고 있는 물가 상승에 대한 우려를 반영했다는 설명이다. 대파 등 농산물 가격 급등에 이어 에너지 가격까지 상승하면 산업 전반에 비용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어서다. 전기료 인상은 제조업부터 서비스업까지 산업 전 분야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요인이다. 김용범 기재부 1차관은 지난 19일 “2분기 공공요금을 안정적으로 관리해 소비자물가에 미치는 영향이 최소화되도록 하겠다”고 전기료 동결 방침을 밝히기도 했다.
코로나19로 저유가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해 약 4조1000억원 영업이익을 낸 점도 감안했다. 발전자회사 연료비가 유가·유연탄가의 하락으로 전년 대비 3조5000억원 감소한 영향이었다. 한전이 전기요금 동결을 버틸 수 있는 체력이 비축됐다는 점을 고려했다는 것이다.
이번 연료비 동결이 정부의 정치적 판단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연료비 연동제 도입 이후 예상보다 빨리 전기요금 인상 요인이 발생하자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것이다. 4·7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농산물 등 ‘밥상물가’가 급등한 상황에서 국민 생활에 영향이 큰 전기료 인상까지 결정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서민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전기료 인상이 불러올 민심 이반을 걱정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2011년에도 연료비 연동제 도입을 추진했지만 속도를 내지 못하다가 2014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물가 안정 등을 이유로 포기했다.
만약 연료비 연동제가 제 기능을 발휘할 경우 3분기부터는 연료비 인상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뱅크오브아메리카와 JP모간 등은 유가가 연내에 배럴당 100달러 수준까지 올라갈 수 있다고 내다보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도 최근 “지난해 말 중국과 인도를 중심으로 회복세를 보이던 석유 수요가 올해 선진국으로 옮겨가면서 당분간 유가 상승이 지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유가가 오르면 여기에 연동되는 LNG 등 다른 에너지 가격 역시 덩달아 오를 수밖에 없다. 연료비연동제는 이 같은 에너지 가격 상승을 전기료에 반영하는 구조다. 다만 인상폭은 제한돼 있다. 전분기 대비 ㎾h당 3원을 넘겨 인상 및 인하를 할 수 없고, 기준이 되는 전년 평균 연료비 대비 ㎾h당 5원을 초과하는 인상·인하도 막았다. 3분기 전기료 인상폭은 2분기보다 ㎾h당 3원까지 오르고, 4분기에는 여기서 다시 2원 또는 3원 오를 전망이다. 최대 인상을 가정하면 월 평균 350㎾h의 전력을 사용하는 4인 가구의 전기료는 올 연말 월 5만6100원으로 1분기와 2분기 대비 2100원 인상될 수 있다. 다만 하반기에도 물가 인상 압력이 높을 것으로 예상돼 정부가 또다시 전기료 인상 유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이 탓에 한전 안팎에서는 정부의 요금조정 유보권이 수시로 발동되는 상황을 우려하고 있다. 연료비연동제 시행이 또 한번 무력화 될 수 있다는 전망에서다. 최고운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이번 전기료 결정은 연료비연동 요금제가 실제로 작동하는지를 입증할 중요한 변곡점이었다”며 “정부가 나서 전기료를 동결하며 정부와 연료비연동제에 대한 시장의 불신은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지훈 기자 liz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