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위원회가 가계부채 대책의 주요 내용으로 거론되고 있는 ‘신용대출 원금 분할상환’을 연소득을 뛰어넘는 고액 신용대출에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대출시장 혼란을 우려해 ‘1억원 이상 모든 대출에 적용한다’는 식의 일률적 기준은 정하지 않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금융위는 “구체적인 내용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말을 아끼고 있지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신용대출 문턱이 지금보다는 높아진다는 점이다. 은행 창구에선 미리 대출을 받아두려는 ‘막차 수요’가 들썩이면서 올 들어 개설된 마이너스통장만 3만 계좌(21일 기준)를 넘어섰다.
“상환능력 넘는 대출 줄여야”
24일 금융위에 따르면 오는 3월 발표될 ‘가계부채 선진화 방안’은 차주(借主)의 상환능력 범위에서 돈을 빌리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금융위 관계자는 “차주의 상환능력과 대출기간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과도한 대출은 지양하고, 상환능력을 넘어설 것 같으면 일정 부분 분할해 갚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금융위는 지난 19일 발표한 신년 업무계획에서 “일정 금액 이상의 신용대출에 원금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주택담보대출은 원금과 이자를 동시에 갚아나가야 하지만 신용대출은 이자만 내며 만기를 계속 연장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앞으론 신용대출도 원리금을 함께 갚도록 바꿔서 ‘영끌 대출’(영혼까지 끌어모아 최대 한도로 받는 대출)로 주식·부동산에 무리하게 투자하는 일을 막겠다는 취지다.
금융위 관계자는 “분할상환 적용 기준을 대출금액으로 일괄적으로 정할 수는 없고 소득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용대출 금액이 소득과 견줘봤을 때 감당 가능한 규모라면 한꺼번에 갚든 나눠서 갚든 상관 없지만, 소득보다 과하게 빌렸다면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것이 당국의 인식이다.
신용대출 ‘영끌’ 어려워진다
돈을 빌린 사람의 소득 외에 대출기간도 변수가 될 전망이다. 신용대출 만기는 통상 1년 단위로 계속 연장해 최장 10년까지 가능하다. 금융위는 “만기가 짧은 신용대출에까지 분할상환 의무를 지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했다. 처음엔 분할상환을 적용하지 않다가 연장을 통해 만기가 길어지면 분할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금융위는 “신용대출 원금 분할상환의 구체적 기준은 확정되지 않았다”며 “금융권 의견을 수렴해 3월 발표할 것”이라고 했다.가계부채 대책의 또 다른 핵심은 금융회사 단위로 관리하고 있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개인 단위로 적용하는 것이다. 주택담보대출 심사 때 쓰는 총부채상환비율(DTI)도 단계적으로 DSR로 대체한다는 게 금융위의 구상이다.
DSR은 담보·신용대출을 포함한 모든 가계대출의 1년치 원리금상환액을 연소득으로 나눈 값이다. 지금은 은행별로 평균 40%만 맞추면 되기 때문에 개인별 DSR은 40%를 넘겨도 된다. 이것을 1인당 DSR이 40%를 넘지 못하도록 일괄 적용한다는 얘기다. 이렇게 되면 주택담보대출 등을 받아둔 사람은 신용대출 한도가 자연스럽게 줄어든다. 여기에 고액 신용대출의 원금 분할상환까지 도입되면 DSR의 분자가 커지는 만큼 개인별 DSR은 더 높아지는 효과가 있다.
‘마이너스통장 개설’ 3주 새 3만 계좌 넘어
이런 가운데 미리 대출 한도를 넉넉하게 확보해두려는 소비자도 적지 않다. 금융위는 규제 시행 이전에 받은 신용대출에는 새 제도를 소급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5대 은행(국민 신한 하나 우리 농협)에서 4일부터 21일까지 마이너스통장(한도거래대출 또는 통장자동대출) 방식으로 나간 신규 신용대출은 3만1305건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말 하루 1000건대이던 마이너스통장 개설이 요즘은 매일 2000건 이상 이뤄지고 있다. 이들 5대 은행의 마이너스통장 대출 잔액은 3주 새 6766억원 불어났다.은행권 관계자는 “대출 규제가 강화되기 전에 마이너스통장을 뚫어두려는 사람이 최근 많이 늘었다”며 “금융위가 고액 신용대출의 분할상환 의무화 적용 대상에서 마이너스통장은 제외한다고 하자 신규 개설이 급증했다”고 말했다.
주요 은행의 전체 신용대출 잔액은 당국이 제시한 관리 목표치(월 최대 2조원 증가) 수준에서 유지되고 있다. 은행 관계자는 “마이너스통장 신규 개설과 잔액은 늘고 있지만, 신규 대출의 한도 자체가 줄어 전체적으로는 관리 가능한 범위”라고 했다.
임현우 기자 tardi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