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 규제 품목 없고 조기 허가 받아…소강국면 진입"
"자유무역 해쳤다는 비판 피하고 규제 유지하려는 기만책"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수출규제 후 일본 정부가 처음으로 감광액(포토레지스트) 수출을 허가했다. 이에 대해 확전을 자제하며 소강국면에 들어서기 위한 조치로 보는 시각과 명분 싸움을 위한 기만책으로 보는 시각이 맞물린다.
이낙연 국무총리는 8일 "(일본이) 극자외선(EUV) 포토레지스트의 한국 수출을 (수출규제 이후) 처음으로 허가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는 지난 7월 반도체·디스플레이 3개 소재를 한국에 수출할 때 개별 허가를 받도록 규제 조치를 시행했다.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초고순도 불화수소),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이 대상이다.
7월 수출규제에 나선 뒤 한 달 만에 허가를 낸 것은 이례적이라는 것이 현지 반응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개별심사에는 90일 정도 표준심사 기간이 있지만 이번 신청에 대해선 1개월 정도 기간에서 허가를 받았다"고 말했다. 통상 절차라면 허가를 위한 심사 기간이 더 길어져야 한다는 것.
국내 반도체·IT 업계의 반응은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다. 소재 수출규제에 이어 일본이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배제했지만, 전날 공개한 수출규제 시행세칙에는 개별허가 품목 추가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다.
포토레지스트, 에칭가스,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등과 같이 개별허가를 받아야 하는 품목으로 지정되면 수출이 이뤄질 때 마다 일본 경제산업성(경산성)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일본 제품 수입이 매우 번거로워지는 셈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개별허가 품목 추가 지정이 이뤄지지 않았고 반도체 소재 수출 허가도 나오며 양국의 대립이 소강국면을 맞이할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우리 정부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 폐기도 검토하고 나서면서 일본 정부가 확전을 우려한 조치라는 시각이다.
이번 허가가 명분 싸움을 위한 기만책이라고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우익 성향의 산케이신문은 이번 수출 허가를 두고 "한국이 주장하는 '금수 조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수출 허가는 규제가 정당한 조치라는 반증으로 사용될 수 있다. 군사 전용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이 확인되면 정상적인 수출이 가능한 만큼 기존 규제는 부당한 경제 보복이 아니라는 해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일본 수출규제 제소를 준비하며 규제 철회를 요구하고 나섰다. 만약 이러한 논리가 받아들여진다면 규제에 대응할 수단이 마땅치 않게 된다. 일본이 수출 규제 품목을 추가하기도 용이해진다. 산케이는 일본 정부는 안보의 관점에서 리스트 규제의 품목 확대 검토를 진행할 것"이라며 수출 규제 품목을 늘릴 수 있다고 전했다.
일본 정부가 확대를 검토하는 리스트 규제 품목은 생화학 무기의 원료, 첨단재료나 센서, 레이더, 통신기기 등 약 240개 항목에 달한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글로벌 공급망을 훼손했다는 비판이 이어지자 '수출 금지는 아니다'라고 보여주는 명분 쌓기에 가까운 결정으로 보고 있다"며 "일본이 갑자기 소재 수출규제에 나서고는 일부 소재 수출을 허가하면서 업계 혼란이 더 커질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한경닷컴 뉴스룸 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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