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외면으로 일본 소재 산업 타격 전망
일본 정부가 석유화학제품 수출 규제에 나섰지만 한국에 큰 피해는 없을 전망이다.
일본 정부는 한국에 반도체, 디스플레이 소재 수출을 규제한다고 1일 밝혔다.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 대해 한국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린데 대한 보복조치라는 점도 밝혔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이날 "(양국 간) 신뢰 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며 플루오린 폴리이미드(PI), 레지스트, 에칭가스(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개 품목 수출 우대 대상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규제 강화안을 발표했다. 수출 규제는 4일부터 시작되며 한 달의 유예 기간을 갖는다.
우대 대상에서 제외되면 소재를 수출하는 일본회사는 계약별로 90일가량 걸리는 일본 정부 당국의 승인절차를 거쳐야 한다. 일본 정부는 기본적으로 징용 배상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한국에 대한 수출을 허가하지 않을 방침으로 알려져 사실상의 금수 조치로 받아들여진다.
이번 수출 규제 대상 제품들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생산에 필수적이면서도 일본 의존도가 높은 품목이다. PI와 포토레지스트(감광액)는 일본의 시장점유율이 90%, 에칭가스는 70% 수준이다. 다만 대체 불가능한 것은 아니고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 외의 수요처가 마땅치 않은 품목이기에 피해는 제한적일 전망이다.
반도체 생산에 쓰이는 감광액은 미국 다우케미컬과 한국 금호석유화학, 동진쎄미켐, 동우화인켐 등도 생산하고 있다. 특히 동진쎄미켐은 1993년 감광액을 국산화했고 삼성전자가 지분투자까지 했기에 유사시 조달이 가능할 전망이다.
PI 역시 현재는 일본 시미모토에서 전량 수입되지만 코오롱인더시트리가 양산 설비를 갖췄고 하반기에는 SKC, SK이노베이션이 각각 PI 생산설비 상업가동과 완공을 예정하고 있다. 소재 교환으로 다소 공정 변동은 필요하지만 큰 문제는 아니라는 평가다.
에칭가스의 경우 사정이 약간 다르다. SK머티리얼즈, 원익머티리얼즈, 솔브레인 등이 생산하고 있지만 종류가 달라 일본산을 즉각 대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고순도 불산을 생산하는 기업도 있지만 반도체 EUV 공정에 필요한 초고순도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반도체 업계는 한 달의 유예 기간동안 재고를 최대한 축적하고 대체재를 확보한다는 방침이다. 이들은 현재 2~3개월치 재고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현재 시장이 공급과잉 상태인 만큼 그간 생산해둔 반도체 재고 소진과 가격 인상에도 나설 전망이다.
전문가들은 일본 정부의 규제가 장기화되지 못할 것으로 내다봤다. 우선 핵심 소재 수출 규제가 불공정행위에 해당해 세계무역기구(WTO) 제소가 이어질 수 있다. 이는 일본 기업들에 대한 신뢰도도 하락시킨다. 정치 상황에 따라 소재 수출을 규제하는 국가의 기업과 장기적인 거래는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해당 품목의 수요처가 한국 외에 마땅치 않다는 점도 문제다. 일본 스텔라의 경우 생산하는 에칭가스의 100%를 한국에 공급하기에 수출이 막히면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메모리 반도체 생산설비 점유율이 50%를 넘는 상황이기에 다른 일본 기업들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다는 평가다. 또 대부분의 업체가 장기공급계약을 맺고 있기에 이에 따른 소송도 이어질 전망이다.
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한국 기업들의 점유율은 50% 이상"이라며 "안정적인 소재 공급망을 신규 구축하면 일본 소재 기업들의 타격이 막대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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