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거래위원회가 대기업 계열 시스템통합(SI) 업체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실태조사에 착수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대기업들에 “SI 업체를 계열분리하든지 관련 지분을 정리하라”고 압박해 온 데 따른 수순이란 해석이다. 하지만 공정위가 문제삼고 있는 대기업 SI 업체는 과거 전산작업 수준을 벗어나 빅데이터, 인공지능(AI) 등 그룹의 4차 산업혁명을 이끄는 첨단기업으로 진화하고 있다. 공정위가 이런 현실을 무시한 채 획일적인 일감 몰아주기 잣대로 SI업체를 팔라 말라 간섭한다는 것 자체가 심각한 기업 규제가 아닐 수 없다.
그동안 공정위는 보안성 확보에 따른 SI 업체들의 높은 내부거래 비중을 ‘부당한 일감 몰아주기’로 일방적으로 규정해 온 데 이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공공조달시장에서 대기업 SI 업체들의 진입을 제한해 왔다. 그 결과 기존 사업으로는 SI가 더 이상 성장할 수 없게 됐다. 해외에서는 대기업이 국내 실적이 없어 수출에 애로를 겪고 있고, 국내에서는 대기업이 빠지면서 품질과 AS 등에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게 이를 말해준다.
그러던 SI 업체는 때마침 불어온 4차 산업혁명을 맞아 스마트팩토리와 스마트물류 등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섰고, 지금은 그룹 전체의 스마트화로 생산성을 올리는 핵심기업으로 발돋움하고 있다. 공정위가 대기업에 이런 SI 업체를 계열분리하든지 관련 지분을 매각하라고 압박하는 건 4차 산업혁명 컨트롤타워를 외부에 넘기라는 것이나 다름없다. 영업비밀로 가득찬 제조현장의 지식들을 데이터화하고, 이를 기반으로 디지털 전환에 나서고 있는 기업들에는 특히 그렇다.
스마트팩토리 등 제조업의 스마트화는 산업통상자원부가 제시한 새로운 성장동력이다. 더구나 정부는 중소기업의 스마트팩토리 전환을 위해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주문해왔다. 대기업의 스마트팩토리가 늦어지면 협력 중소기업의 스마트팩토리도 늦어져 결국 주력 제조업의 전체 경쟁력이 떨어질 게 뻔하다. 산업부가 공정위의 SI산업 규제를 강 건너 불구경하듯 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현실과 동떨어진 공정위의 일방적인 규제에 문제를 제기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 침묵으로만 일관한다면 ‘산업정책 실종’ ‘산업부 무용론’ 등의 목소리가 더욱 강하게 터져나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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