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세권 등에 대한 도시규제 풀고
재건축·재개발 사업도 활성화해
원하는 지역에 주택공급 늘려야
최창식 < 前 서울 중구청장 >
정부는 지난달 21일 집값 안정 대책으로 서울 인근에 신도시 4~5곳과 수도권 신규 택지 17곳에 33만 가구를 공급한다고 발표했다. 조세 규제에만 몰두하던 정부가 주택 공급 확대 계획을 내놓은 것은 그나마 다행이다.
주택은 일반 소비재와 달리 입지성이 강하다. 같은 주택이라도 일터, 교육·문화시설 등으로의 접근성, 자연경관, 주변의 경제·사회적 특성 등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집값 폭등 문제는 일부 투기세력 탓도 있겠지만 기본적으로는 소득 증가에 따른 양질의 주택 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한 데서 기인한다. 각종 도시개발 규제들로 인해 주거 인프라가 잘 갖춰진 지역에서 질 좋은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될 가능성이 불투명하기 때문이다.
이번에 발표된 주택 공급 계획을 살펴보면 서울에서 가까운 여러 곳에 그린벨트를 해제하는 등으로 주택을 공급할 계획이지만 주택의 특성이나 집값 폭등에 대한 속성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해 집값을 안정시키는 효과는 미약할 것이고, 그나마 일회성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대다수 택지가 집값이 정체되거나 하락세에 있는 지역에 계획돼 있어 집값 폭등을 주도한 강남 지역 등과 비슷한 좋은 주택시장을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신도시 건설은 토지 수용, 택지 조성, 건축, 주거지 안정 등에 10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집값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시차적 한계가 있다.
현재도 서울 근교에 개발 가능한 토지 자원이 없는 상황에서, 계획된 신도시들이 완공된 뒤 지속적인 신규 택지 확보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주택시장을 안정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렇게 정책효과도 미약한 신도시 건설을 위해 남아 있는 그린벨트마저 풀려는 것이 안타깝기도 하다.
무엇보다 개발 규제를 완화해 민간이 주택시장에서 필요한 좋은 집을 지속적으로 공급하도록 해야 한다. 일터, 교육·문화시설 등으로의 접근성이 좋고 거주환경이 잘 조성돼 있는 서울 도심 지역에 교육 등 일부 여건만 보완해 주면 강남에 준하는 주거지가 될 수 있다.
먼저 서울 시내 360개 역세권에 다량의 좋은 주택이 들어서도록 도시 규제를 과감히 완화하자. 젊은 직장인 등 늘어나는 1인 가구를 위한 양질의 소규모 주택 등을 일정 규모 이상 짓는 조건으로 규제를 완화하되 발생하는 과도한 개발이익은 신혼부부 임대주택 등으로 환수하면 일석이조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시범적으로 LH(한국토지주택공사) SH(서울주택도시공사) 등이 130여 개의 환승역에 대한 민간 개발을 지원하기만 해도 20만 가구 이상의 좋은 주택을 공급할 수 있다.
그리고 재건축·재개발사업도 중장기 계획에 의거해 단계별로 활성화해서 양질의 주택이 지속적으로 공급된다는 신뢰를 줘야 한다. 도시는 시대에 따라 거듭나는 속성이 있어 재건축도 한국형 도시재생의 한 축이 될 수 있다. 더 이상 부정적으로만 보지 말고 문화적으로나 자연경관 보전상 개발 규제가 꼭 필요한 지역을 제외하고는 규제를 과감히 풀어야 한다. 다만 너무 많은 수량의 기존 주택이 일시에 철거됨에 따라 발생할 문제를 예방하기 위해 건축 연도 등에 따라 지역별 동시 개발 적정 규모를 제한해 단계적으로 개발되도록 지원해야 한다.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수요 조절도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시장에서 주택이 원활히 공급되도록 해야 한다. 당면 문제 해결을 위한 일회성 대책이 아니라 중장기적 종합 계획에 따라 수준별 수요에 맞는 공급이 지속될 것이라고 시장이 신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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