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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밀리듯 '채용 보따리' 풀었지만… 기업들 "경영 악화땐 부메랑" 속앓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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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용 확대 고민 커진 대기업·은행

정부 눈치보며 '릴레이 발표'
삼성, 4만명 고용계획 내놓자
포스코도 2만명 채용 약속
한화 등 10대그룹 잇따라 가세

30대그룹 "우리도 내놔야 하나"
대내외 변수로 수익성 악화 속
중장기 채용 계획 '족쇄' 될수도



[ 장창민/김보형 기자 ]
2013년 8월28일 청와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회장 등 10대 그룹 총수가 한자리에 모였다. ‘투자’와 ‘일자리 창출’이란 화두를 던진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선물 보따리’를 내놓기 위해서였다. 허창수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GS그룹 회장)은 그 자리에서 연간 155조원 투자, 14만 명 고용 계획(30대 그룹 기준)을 발표했다. 각 그룹이 연초 세웠던 목표를 합친 것과 비교해 투자는 4%(5조9000억원), 고용은 10%(1만3000명)가량 늘어난 규모였다. 정부 눈치를 보다 떠밀리듯 무리한 계획을 내놓은 것 아니냐는 말이 흘러나왔다.

5년이 지나 정권이 바뀌었지만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삼성을 비롯한 주요 대기업이 앞다퉈 중장기 투자·채용 계획을 쏟아내고 있다. 5년 전과 다른 점은 주요 그룹이 계획을 한꺼번에 모아 공개하는 대신 그룹별로 ‘릴레이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는 것.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주요 그룹을 돌며 일자리 창출을 ‘독려’한 뒤부터다. 이 과정에서 ‘투자 구걸’, ‘기업 팔 비틀기’ 논란 등도 불거졌다.

포스코, 채용 계획 3배 늘려

삼성이 지난달 미래 성장산업에 향후 3년간 180조원을 쏟아붓고 4만 명을 신규 채용(삼성전자서비스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8000명 포함)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한 게 ‘기폭제’가 됐다. 삼성은 당초 채용 계획보다 1만 명 이상 늘려 잡았다. 현대차그룹(5년간 4만5000명 채용)과 SK(3년간 2만8000명), LG(올해 1만 명) 등에 이어 삼성이 대규모 고용을 약속하자 ‘바통’이 이어지듯 10대 그룹으로 확산됐다. 포스코(5년간 2만 명)와 GS(5년간 2만1000명), 한화(5년간 3만5000명) 등이 동참했다.

재계에선 간판 그룹들의 투자·고용 확대 발표가 침체의 늪에 빠진 국내 경기를 되살리는 데 어느 정도 역할을 할 것이란 기대가 나왔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대기업들이 정부 눈치를 보다 ‘과한’ 채용 계획을 떠밀리듯 내놓은 게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무언(無言)의 압박’이 작용했다는 관측이다.

포스코도 내년부터 5년간 2만 명의 정규직을 채용한다고 발표했다. 최근 5년(2014~2018년)간 뽑은 인원(7000명)의 세 배에 가까운 규모다. 포스코는 이 중 1만 명을 철강부문에서 뽑기로 했다. 그동안 이 회사는 철강부문에서 연평균 700~800명가량을 충원했다. 이 계획대로라면 내년부터 5년간 2000명을 채용해야 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제철소 특성상 새로운 설비투자 없이 예년보다 두 배 이상 많은 인력을 뽑아 배치하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포스코 관계자는 “퇴직 인원 충원과 신규 생산라인 투자 등을 감안한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우리도 성의표시 해야 하나…”

다른 대기업이 내놓은 채용 계획 역시 현실성이 떨어지는 게 아니냐는 시각도 있다. 당초 계획보다 채용 인력을 크게 늘리려면 그만큼 투자와 성장이 뒷받침돼야 하는데 보호무역주의 등장과 대기업 규제 등 대내외 변수와 불확실성 탓에 기업들의 수익성이 뒷걸음질치는 상황에서 자칫 ‘공수표’가 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기업마다 신규 채용하는 직원 수만큼 기존 인력을 정리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관측도 있다. 한 대기업 인사팀장은 “이미 정해진 투자계획 범위에서 신규 고용을 늘리려면 희망퇴직 등을 통해 기존 인력을 어느 정도 정리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되물었다. 한 번 채용하면 해고가 어려운 국내 고용 법규와 제도를 감안하면 새로 뽑는 직원 수만큼 기존 인력을 내보낼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는 게 재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침체기로 접어든 경기가 더 어려워지면 기업들의 중장기 채용 계획이 되레 ‘족쇄’가 될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업황이 더 악화돼 채용 규모를 줄이거나 인력 구조조정을 해야 할 상황에 직면하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미 투자·고용 계획 발표를 마친 곳 외에 30대 그룹에 속한 대기업의 속내는 더 복잡하다. ‘릴레이 발표’에 동참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부담 때문이다. 30대 그룹에 속한 한 계열사 대표는 “회사 안팎에서 우리도 뭔가 내놔야 하는 것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 게 사실”이라고 토로했다.

장창민/김보형 기자 cmj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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