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태 논설위원
미·북 정상회담이 끝난 지 1주일이 흘렀다. 이번 회담으로 한국의 안보 지형에는 어떤 변화가 생긴 걸까. 북한은 정말 핵을 포기할까. 한반도에서 전쟁 가능성은 낮아진 건가. “전쟁 직전까지 갔던 양국이 사상 첫 정상회담을 하고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기로 했으니 한반도 리스크는 줄어든 것 아니냐”는 견해가 적잖은 것 같다. 반면 “오로지 김정은 요구만 들어주고 한·미 동맹에 금만 가게 만든 회담으로, 이제 안보도 우리 힘으로 지켜야 하는 절박한 위기에 처했다”는 평가도 있다.
엇갈리는 미·북 회담 평가
어느 쪽 판단이 진실에 접근하고 있을까. 시장을 한번 보자. 정상회담 이후 문을 연 증시는 지난 14일 45.35포인트(1.84%) 하락을 시작으로 어제까지 4거래일간 무려 128.72포인트(5.2%)나 폭락했다. 증시 주변에서는 주가 급락의 이유로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신흥국 위기를 꼽는 듯하다. 재점화된 미국과 중국 간 ‘무역전쟁’ 영향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지난 13일 미국의 금리 인상은 오래전부터 예상된 이벤트이고 신흥국 위기는 진작부터 불거졌지만 국내 증시에 큰 악재로 작용하지 않았다. 미·중 간 무역전쟁은 지난 3월22일 미국이 기준금리를 올렸을 때도 동시 악재로 터졌지만 당시 4거래일간 국내 증시 하락폭은 76.73포인트에 그쳤고 이후 시장은 다시 상승세로 돌아섰다. 어제까지 4일 연속 폭락세를 이어가는 지금과는 상황이 좀 다르다.
외국인 매매 동향도 전과 다르다. 14일부터 어제까지 4거래일간 외국인 투자자는 1조5000억원이 넘는 주식을 내다 팔았다. 지난 3월 미국 금리 인상 직후 4거래일간 매도금액(4770억원)과는 비교할 수 없이 큰 규모다. 원·달러 환율이 14일부터 어제까지 4거래일간 32원(2.96%)이나 폭등한 것은 그 결과로 봐야 한다. 지난 3월 미국 금리 인상 후 4거래일간 원·달러 환율은 오히려 2원가량 떨어졌다. 이번 미국 금리 인상 후 미·중 무역분쟁 당사국인 중국을 제외한 아시아 신흥국 증시 하락률은 2~3%대로 한국 증시 하락률의 절반 정도에 그치고 있다.
냉정한 시장, 떠나는 외국인
결과적으로 최근 외국인들이 유독 한국 주식을 많이 팔고 떠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유가 뭘까. 미·북 정상회담은 전 세계 이목을 집중시킨 대형 이벤트였다. 회담 결과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줄었다고 생각한다면 과연 주식을 팔고 떠날까. 한·미 군당국은 어제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단한다고 공식 밝혔다. 김정은이 미사일 엔진 시험장 폐기를 약속한 데 상응하는 조치다.
국내 일각에서는 이를 ‘한반도 긴장 완화’ 조치로 보지만 외국인들은 “북핵은 그대로인데 한·미 간 군사 공조에만 틈이 생기고 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트럼프는 주한미군 철수 이야기까지 꺼낸 상황이다. “북한의 비핵화 가능성은 회의적이며 미국이 북한 체제를 보장한다고 전쟁을 막을 수는 없다”(마이클 그린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선임보좌관)는 말도 이런 분위기를 전달한다.
증권시장처럼 냉정한 곳은 없다. 외국인 투자자들에겐 통일에 대한 염원이나 북한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 따위는 없다. 돈을 잃지 않기 위해 냉철한 이성이 작용할 뿐이다. 그들의 눈에 지금 한반도는 미군의 전쟁 억지력이 약화되고 있는 ‘위험한’ 투자처로 비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지난 13일 선거에서 여권은 국회는 물론 지방에서도 더욱 공고한 기반을 구축했다. ‘기업 규제’가 훨씬 강화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이래저래 돈이 한국을 떠날 이유가 늘고 있다.
kst@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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