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임채성 한국인더스트리4.0협회 명예회장
2010년대 초·중반부터 산업용 인터넷 센서, 3차원(3D) 프린팅, 데이터 분석 등 디지털 기술이 제조업에 융합되기 시작했다. 기존 제조업이 제품의 품질 및 공정 개선에 초점을 맞췄다면 신제조업은 고객의 사용 경험에 따라 맞춤형 제품과 서비스를 공급하는 게 특징이다. 빅데이터 분석, 설계, 프로그래밍, 엔지니어링 등 공장 밖의 활동이 생산성을 좌우하게 된 것이다. 미국의 신제조업 정책, 독일의 인더스트리 4.0 등은 이런 신제조업 부흥 전략을 담은 프로젝트다.
냄비 회사를 예로 들어보자. 과거에는 냄비를 파는 게 목적이었다. 냄비의 품질과 가격이 경쟁력의 핵심 요소였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냄비 회사는 소비자가 맛있는 찌개 요리를 경험할 수 있도록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으로 요리법을 안내한다. 고객에게 딱 맞는 냄비와 국자, 양념소스를 제공하는 플랫폼 역할도 한다. 3D 프린팅을 통해 맞춤형 냄비를 제작하는 한편 냄비에 센서를 붙여 고객 취향과 요리 습관을 실시간으로 분석한다. 이런 빅데이터를 활용해 소비자들이 요리를 더 잘할 수 있도록 ‘가이드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것이다.
과거처럼 양질·염가 제품을 만드는 데 주력하는 기업은 다른 플랫폼 기업의 하청업체가 될 수밖에 없다. 달라진 경영 환경에 맞춰 유연하게 변신하고 고객에게 필요한 제품·서비스를 즉각 제공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 있다.
‘상식을 뒤엎는 변화’도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2010년부터 세계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제조업 비중이 커지기 시작했다. 지난 40여 년간 이런 추세는 거의 나타난 적이 없었다. 신제조업 분야에서 가장 앞선 미국과 독일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두 나라에서 제조업 고용자 수는 큰 폭으로 감소했다. 하지만 2010년대 들어 증가세로 전환했다. 이는 제조업이 고용과 부가가치 창출에 부정적이란 기존 인식이 잘못됐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우리나라에선 제조업의 경쟁력을 높이려는 범국가적 정책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미국 독일 등처럼 국가 수반이 제조업을 부활시키기 위해 전면에 나서야 한다.
임채성 < 건국대 기술경영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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