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식 조작 외제 중고 타워크레인 132대 건설현장 사용중
연식 조작 공공연한 비밀
연식 낮은 외제 중고 크레인 선호
업체, 실제보다 1~10년 속여 공급
허술한 수입품 검증 절차 탓
국산만 제조사 증명서 요구
수입은 제조일자 기재 허술
[ 황정환 기자 ] 어이없는 크레인 붕괴 사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낡은 중고 타워크레인을 해외에서 들여와 연식을 속여 팔아온 일당이 적발됐다. 만든 지 15년 된 크레인을 5년짜리 ‘A급’ 중고로 둔갑시켰다. 수입 과정에선 어떤 확인 절차도 없었다. 건설업계에선 공공연한 비밀로 통하던 연식 조작 실태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는 지적이다.
◆연식 조작 크레인 모두 현장서 사용 중
서울지방경찰청 국제범죄수사대는 해외에서 중고 타워크레인을 수입하면서 제조 연식을 속인 건설장비 수입업체 대표 이모씨(44) 등 2명과 연식 조작 사실을 알면서도 이들로부터 크레인을 구매한 김모씨(55) 등 16명을 공정증서 원본 등의 부실기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10일 밝혔다.
이씨 등 수입업자 2명은 2014년 1월부터 2017년 2월까지 프랑스 이탈리아 등 해외에서 사용하던 중고 타워크레인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연식을 실제보다 1~10년가량 앞당겨 수입신고서를 작성했다. 이를 토대로 이들은 관할구청에 차량을 등록해 최신 건설기계로 둔갑시켰다. 15년 된 중고 크레인의 연식을 5년으로 조작하기도 했다.
이같이 조작해 유통한 타워크레인은 132대였다. 132대 모두 현재 건설 현장에 투입돼 작업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현장에선 가격이 국산 신제품의 50~70% 정도인 수입 중고품의 인기가 높다. 장비를 건설회사에 빌려주고 임대료를 받는 중장비 대여업체로선 손익분기점이 7~8년에 달하는 국산 신품에 비해 중고는 초기 비용이 낮아 투자금 회수 기간이 짧기 때문이다. 안전 문제 때문에 건설업체들은 연식 10년 미만의 타워크레인을 선호한다. 연식이 낮으면 그만큼 임대료도 높아진다. 이씨 일당이 수입 타워크레인 연식 조작에 나선 이유다.
◆허술한 수입품 검증 절차
지난해 9월 국토교통부가 파악한 전국에 설치된 타워크레인 6074대 중 외국산 중고는 3475대로 57%다. 연식 조작이 업계의 공공연한 비밀로 통했던 만큼 나머지 중고 타워크레인에 대한 조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경찰 관계자는 “국내 10여 개 수입업체 중 이번에 적발된 곳은 2곳”이라며 “다른 중고 타워크레인 유통 과정도 들여다보고 있다”고 말했다.
허술한 수입품 검증 절차가 근본 원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잡힌 일당들은 세관 수입신고서 작성 시 제조일자 기재가 의무사항이 아니고, 부정확하게 기재해도 당국이 확인하지 않는다는 점을 악용했다. 현행 건설기계관리법에 따라 정부는 국내에서 제조한 타워크레인에만 제조사 증명서를 요구하고 있다. 건설기계 등록을 담당하는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수입 중고크레인의 연식을 일일이 검증하긴 어렵다 보니 이들의 범행은 업계 관행처럼 이뤄졌다.
정부는 뒤늦게 대책 마련에 나섰다. 지난 5일 국토부는 건설기계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을 개정해 오는 3월부터 수입신고자는 외국산 등록 시 제작사 인증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도록 했다. 국토부는 지난달부터 전국 타워크레인을 대상으로 제작 연식 허위기재 등 위법 사항이 없는지 전수조사를 펼치고 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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