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팀 리포트
배달업체 독촉에… 돈 때문에…
오토바이 사고 작년 11% 늘어
하루 1000건… 교통위반 다반사
서울서만 지난해 64명 사망
배달기사는 개인사업자
배달대행업체서 돈 아끼려 근로자 아닌 사업자로 등록
사고로 인해 소송 났을 때 사법부 판단도 엇갈려
[ 박진우 기자 ]
지난달 4일 오후 6시30분께 경기 성남 중앙시장 인근 사거리. 배달대행 업체에서 7개월째 일하던 김모씨(23)는 오토바이를 몰다 건널목을 건너던 이모양(14)과 충돌했다. 신호등엔 빨간 불이 들어와 있었지만 정해진 배달 시간을 맞추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내달렸던 것. 레스토랑에 들러 음식물을 수령하고 약 7㎞ 거리의 배송지까지 배달을 완료하는 데 주어진 시간은 단 20분. 다행히 피해자 이양은 타박상을 입는 데 그쳤지만, 오토바이와 함께 넘어진 김씨는 전치 12주의 부상으로 일을 쉬어야만 했다.
최근 바로고 배민라이더스 푸드플라이 부릉 등 배달대행 업체가 우후죽순 생겨나면서 이들 업체에 소속된 오토바이 배달 기사들의 교통사고가 급증하고 있다. 이들 기사가 ‘신속 배달’을 위해 각종 교통 법규 위반이나 ‘곡예 운전’을 서슴지 않으면서 도로 위 ‘흉기’가 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부분의 기사들이 근로자가 아니라 개인 사업자로서 업체로부터 배달 건당 수수료를 지급받는 방식이어서 사고가 나더라도 치료비 등 합당한 보상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비판도 나온다.
시간에 쫓겨…하루 교통위반만 1000건
8일 경찰청에 따르면 전국 오토바이 사고 건수는 2014년 1만1758건에서 지난해 1만3076건으로 11.2% 늘었다. 지난해 서울에서 이륜차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은 64명으로 전체 교통사고 사망자(343명)의 18.6%다. 서울시 관계자는 “서울시 이륜차 교통사고 사망자 비율은 전국 평균(13%)보다 6%포인트 높다”며 “모바일 배달 앱(응용프로그램) 시장이 활성화하면서 관련 교통사고가 늘어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배달대행업계에 군소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은 물론 대형 정보기술(IT) 회사까지 잇따라 뛰어들면서 경쟁이 가열되고 있다. 이륜차 배달대행 1위 업체인 바로고는 배송기사 1만4000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연간 주문 건수만 1500만 건에 달한다. 국내 1위 음식배달 앱인 ‘배달의민족’을 소유한 우아한형제들도 2015년 자체 외식배달 서비스인 배민라이더스를 선보인 데 이어 경쟁사인 두바퀴콜까지 인수했다. 주문건수는 지난해 기준 2500만 건으로 2년 전에 비해 56% 증가했다. 올 들어 네이버와 카카오, 우버 등 IT 대기업들도 각각 스타트업 지분 투자나 자체 서비스 형태로 배달대행 시장에 진출했다.
경찰청이 지난 5~8월 집중단속을 벌여 서울 시내에서 단속한 오토바이들의 교통법규 위반행위는 무려 8만여 건. 경찰 관계자는 “하루에만 1000여 건의 법규 위반행위를 단속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기업 수준의 업체는 안전수칙을 철저히 교육하지만 등록도 안된 소형업체들은 단속이 나오면 미리 기사들에게 알려 복귀하지 말라고 연락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인건비 절감으로 수익을 내는 배달대행업계의 특성 때문에 오토바이 배달사고 증가 추세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서울 중구에 사무실이 있는 A업체 본사는 배달 건당 평균적으로 2500~3500원을 기사에게 배분한다. 지사에서 가져가는 수수료는 건당 300~400원으로 기사가 받는 수수료의 10%다. 운전기사들은 1주일 동안 30만원을 채우지 못하면 적립금을 출금할 수 없다.
한 중소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이모씨(34)는 “건당 기준으로 돈을 받기 때문에 7㎞ 거리를 10여 분 만에 주파하기도 한다”며 “콜 두세 개를 한 번에 처리하는 게 보통”이라고 털어놨다. 이 업체는 기사들에게 이륜차 보험이나 산재보험은 물론 오토바이 유류비조차 지급하지 않는다. 성동구에 있는 B업체는 하루 최저 노동시간이 12시간에 달하고 있다. 고객이 일정 수수료를 더 내고 ‘신속 배달’을 요청하면 단 20분 안에 음식 픽업과 배달까지 완료해야 한다.
올해 7월까지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했던 김모씨(24)는 “오토바이 리스비와 유류비, 식사비 등을 합치면 하루에 3만원 이상 드는데 처음엔 10시간씩 일해도 하루에 1만원도 못 벌 때가 많다”며 “다만 시간이 지나 (곡예 운전에) 익숙해지면 하루 7만~8만원 정도 번다”고 전했다.
‘배달 알바’에 수능 마친 고3까지 몰려
오토바이 사고의 절반은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하는 10대들이 내고 있다는 분석이다.
경찰 관계자는 “연말엔 수능을 마친 고3 수험생들까지 배달 아르바이트에 몰린다”며 “전체 이륜차 교통사고의 절반은 10대들이 일으킨 사고”라고 전했다. 안전보건공단에 따르면 2010~2015년 음식점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다 사고를 당한 청소년은 2554명. 이 가운데 53명은 목숨을 잃었다. 한 해 평균 511명이 사고를 당하고, 10여 명이 사망했다.
올해 6월까지 배달대행업체에서 일했던 도모씨(19)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개인사업자로 등록돼 있었다”며 황당해했다. 도씨는 자신이 4대 보험에 가입된 근로자인 줄 알았지만 월급에서 공제되는 금액이 생각보다 많다 싶어 확인해보니 부가가치세 항목이 빠져나간 사실을 알게 됐다. 배달대행업체가 채용 당시 도씨 몰래 개인사업자 신고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해당 업체들은 기사에게 4대 보험료나 식비, 유류비, 월급 등을 지급할 의무가 없다. 이 같은 인건비 절감에 따른 비용은 배달대행업체와 가맹점이 나눠 갖는 구조다. 한 업체 홍보물에 따르면 음식점이 직접 전속 배달기사를 채용하면 최저 월 230만원이 들지만 배달대행 서비스를 활용하면 80만원 이상 아낄 수 있다고 했다.
사업자? 근로자? 사법부 판단도 엇갈려
배달 기사의 지위를 놓고 사법부의 판단도 엇갈리고 있다. 2013년 고등학생이던 공모씨(23)는 배달을 독촉하는 가맹점 부탁에 서두르다 무단횡단하던 보행자와 충돌했다. 척추가 손상되고, 쇄골이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 요양비와 진료비를 지급하기로 하면서 해당 업체에 보상액의 50%를 추징하겠다고 통보했다.
해당 업체는 이에 불복해 소송을 냈고 1심에서 승소했다. 재판부는 배달 기사의 출퇴근 시간이 자유로웠고,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해 공씨의 근로자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지난해 8월 항소심에서도 근무태도에 대한 감독이 없었던 점을 고려해 1심 선고가 유지됐다.
반대 판결도 있다. 서울고등법원은 2013년 배달 근로자가 업무 시간을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해도 “배달 업무 자체가 배달대행업체의 앱을 통해 지휘 및 감독됐다는 점에서 근로자성을 인정한다”고 판시했다.
공익인권법재단인 공감의 김수영 변호사는 “과거엔 근로자성 인정 요건이 1 대 1 대면을 통한 ‘구체적 지휘감독’을 요구했지만 최근 재택근무나 외근을 포함한 ‘상당한 지휘감독’으로 완화되는 추세”라면서도 “스마트폰에 앱을 여러 개 깔면 전속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법원의 판단도 있기 때문에 입법을 통해 보다 명확한 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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