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 만에 회사채 1000만원어치 발행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 면제받으려는 목적"
이 기사는 12월31일(04:24)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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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간 10조원 안팎의 매출을 올리고 보유 현금이 4500억원이 넘는 대기업이 ‘단돈 1000만원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해 그 이유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주인공은 국내 시공능력평가 29위 건설사인 삼성엔지니어링이다. 이 회사는 29일 3년 만기 회사채 1000만원어치를 발행했다고 밝혔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03년 11월 500억원 규모의 회사채(만기 2년짜리)를 발행한 것을 끝으로 11년간 채권시장에서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2000년대 중반부터 매출이 두 자릿수 성장을 거듭하면서 현금흐름(유동성)이 좋아졌고, 그 덕분에 굳이 채권을 찍어 돈을 조달할 필요가 없었다는 설명이다. 삼성엔지니어링은 2012년까지 총차입금보다 현금성자산(단기 금융상품 예치액 포함)이 더 많은 ‘사실상 무차입 경영’을 했다.
지난해 해외 건설 사업장에서 생긴 부실로 1조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내면서 순차입금(총차입금에서 현금성자산을 뺀 것)이 전년도 -1000억원에서 1조원대로 급증하는 등 재무구조가 악화되기는 했다. 하지만 당장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없고, 현금이 모자란 것도 아닌데 회사채를 발행한 이유는 뭘까. 지난 9월 말 현재 삼성엔지니어링의 현금성자산은 4589억원에 달한다. 이번 채권 발행 규모의 4만5000배가 넘는 액수다.
삼성엔지니어링 관계자는 “이번 채권 발행 결정은 ‘하도급 공사대금 지급보증’을 면제받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건설사들은 하도급업체에 공사대금을 주지 못할 경우에 대비해 건설공제조합이나 보증보험사에 공사비에 대한 보증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유사시에 보증기관이 대신 공사대금을 치르도록 하는 것이다.
다만 신용평가사가 부여한 회사채 신용등급이 ‘A0’(상위 6위 등급) 이상인 경우에는 지급보증 의무가 면제된다. 이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건설사는 하도급 대금을 지급 못할 우려가 없는 대형 건설사라 해도 연간 수억~수십억원의 보증수수료를 부담해야 한다. 10년 넘게 채권을 발행하지 않아 회사채 신용등급이 없는 삼성엔지니어링으로선 1000만원의 채권 발행이 수수료를 면제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당장은 채권시장에서 대규모 자금을 조달할 필요가 없어 최소한의 금액으로 회사채를 발행했다”고 했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이번 채권의 신용등급을 ‘A+’로 평가받았다.
이런 사례는 올해 또 있었다. KCC건설은 지난 7월 1억원어치의 회사채(만기 1년짜리)를 발행했다. 그 이전까지 KCC건설의 회사채 신용등급은 ‘A-’였는데, 이 채권의 등급을 ‘A0’로 부여받으면서 하도급 대금 지급보증을 면제받았다.
하헌형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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