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가스값 하락 호재?…英, 재정전망 발표 속도조절 배경은
"국가재정 상황 개선에 증세·공공지출 삭감 재고"
英싱크탱크 "발표 보름 늦추면 정부지출 25조원 주는 상황'
시장 불안은 잠재웠지만 '스태그플레이션' 극복은 과제
(서울=연합뉴스) 황철환 기자 = 무리한 감세 정책 발표와 철회의 여파로 흔들리는 영국 경제의 소방수로 등판한 리시 수낵 신임 총리가 향후 경제방향을 결정할 재정전망 발표를 놓고 속도조절에 들어갔다.
새 내각 출범 이후 금융시장의 혼란이 잦아들기 시작하자 시장 상황을 관망하면서 경제정책의 방향과 수위를 조절하려는 움직임으로 풀이된다.
26일(현지시간) 영국 일간 텔레그래프에 따르면 수낵 총리는 이날 첫 내각회의를 주재한 직후 성명을 내고 10월 31일로 예정됐던 중기 재정전망 발표를 11월 17일로 미뤘다고 밝혔다.
이러한 조처는 제러미 헌트 영국 재무장관이 경제정책을 더욱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고 영국 재무부 소식통은 말했다.
헌트 장관은 이달 15일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세금은 사람들이 바라는 만큼 빨리 내려가지 않을 것이고 일부는 인상될 것"이라면서 고소득자 과세 강화 가능성 등을 시사했다. 영국 정부 부처들에도 예산 삭감 방안을 찾으라는 지시가 전달됐다.
하지만, 시장이 예상보다 빠르게 안정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텔레그래프는 "국가재정 상황이 극적으로 개선되자 수낵 총리가 증세와 공공지출 대폭 삭감 등을 재고하고 있다"면서 "영국 정부 내에선 공공재정과 관련해 사소한 변경으로 충분할 수 있다는 믿음이 커지고 있다"고 전했다.
당초 31일 중기 재정전망과 함께 과감한 정책을 내놓으려 했으나, 이제는 더 완만한 조처를 내놓거나 일부 정책의 경우 아예 없던 일로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란 이야기다.
실제, 리즈 트러스 전 총리의 설익은 정책에 폭등했던 영국 국채금리는 이전 수준을 거의 회복했다. 유럽 각국이 천연가스 비축 목표치 달성에 근접한 영향으로 국제 에너지 가격이 급락한 상황도 긍정적인 요소로 꼽힌다.
수낵 총리의 '속도조절'은 이러한 동향을 중기 재정전망 보고서에 반영하려는 목적도 있어 보인다.
더 안정적인 그림을 제시함으로써 영국 경제에 대한 시장의 우려를 불식할 수 있어서다.
실제, 영국 싱크탱크 레절루션재단은 중기 재정전망 발표 시점을 보름여 간 미룬 이번 조처로 국채금리 하락에 따른 이자비용 감소 등 동향이 반영되면 정부 재정지출 규모가 이전보다 100억∼150억 파운드(약 16조4천억∼24조7천억원)가량 적게 추산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는 영국의 연간 국방예산과 맞먹는 금액이다.
그런데도 350억 파운드(약 57조6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전망되는 영국 정부의 재정부족분을 모두 만회하는 데는 역부족이어서, 총리실은 국민연금 인상이나 소득세율 하향 등 수낵 총리의 공약 이행과 관련해 확실한 답변을 하지 않고 있다고 텔레그래프는 전했다.
총리실 대변인은 이날 첫 내각회의를 주재한 수낵 총리가 "경제 안정과 재정 건전성이야말로 이번 정부의 핵심 사명"이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다만, 금융시장이 안정되더라도 수낵 총리에게는 여전히 넘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미국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진단했다.
보름 전만 해도 심각한 후폭풍을 불렀을 재정전망 발표 연기에도 이날 금융시장이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은 건 수낵 총리에 대한 신뢰를 보여주지만, 영국 경제가 몇 개월 안에 완만하지만 긴 불황에 들어설 것으로 전망되는 상황이어서다.
영국의 물가상승률은 선진국 대다수보다 높은 편이고, 달러 대비 파운드화 가치는 올해 15% 가까이 떨어졌다. 증시에선 자금이탈이 이어지고 있고, 불황에도 물가가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 위험 때문에 증세나 정부지출 삭감과 관련해 과감한 정책을 내놓기도 쉽지 않은 실정이라고 WSJ은 지적했다.
hwangch@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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