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무증상 감염, 감기 바이러스의 교차반응 효과?
미감염자 35%, 신종 코로나 스파이크 단백질에 T세포 활성 반응
베를린 샤리테 의대 연구진, 저널 '네이처'에 논문
(서울=연합뉴스) 한기천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환자에 따라 중증도가 확연히 다르다.
어떤 사람은 생명을 위협할 정도로 심각한데 어떤 사람은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실도 모르는 경우가 있다. 이른바 무증상 감염자가 그렇다.
많은 과학자가 그 답을 구하기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지만, 복합적 원인이 작용할 거라는 추론 외엔 아직 이렇다 할 성과가 보고되지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의 중증도 차이를 가져오는 핵심 요인을 독일 베를린 샤리테 의대와 막스 플랑크 분자 유전학 연구소(MPIMG) 과학자들이 찾아냈다.
가벼운 감기(common cold)를 앓고 나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감염되면 그 증상이 가벼워질 수 있다는 게 요지다.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SARS-CoV-2)와 일종의 교차반응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하나의 항원 물질엔 자주 다수의 항원 결정기가 존재해 각각 다른 항체가 형성되곤 한다.
이런 항혈청은 다른 항원 물질의 동일 항원 결정기나 유사한 항원 결정기에 반응하는데 이런 현상을 교차반응(cross-reactivity), 항체의 이런 성질을 교차 반응성(cross-reactivity)이라고 한다.
샤리테 의대 연구팀은 29일(현지시간) 저널 '네이처(Nature)'에 관련 논문을 발표했다.
이 발견의 실마리는, 면역 반응 조절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도움 T세포(T-helper cells)' 실험에서 나왔다.
샤리테 병원에서 치료 중인 코로나19 양성 환자 18명과 코로나19에 걸린 적이 없는 일반인 68명의 혈액에서 각각 면역세포를 분리한 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합성 스파이크 단백질 조각으로 자극해 도움 T세포가 활성화하는지 봤다.
코로나19 환자 그룹에선 85%인 15명이 활성화 반응을 보였다.
환자의 면역계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와 싸우는 중이었기 때문에 반응률이 높은 건 일견 당연했다.
그런데 미감염 그룹에서 스파이크 단백질을 알아보는 기억 T세포(memory T-helper cells)가 많이 발견된 건 전혀 예상 밖이었다. 미감염 대조군의 35%인 24명이 이런 반응을 보였다.
코로나19 환자의 T세포와 미감염자 T세포가 반응하는 부위도 달랐다.
환자 T세포는 스파이크 단백질 전체에 반응을 보였지만, 미감염자 T세포는 특정한 부분에만 반응했다.
미감염자 T세포의 반응 부위는, 가벼운 감기를 일으키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스파이크 단백질에서 구조적 유사성을 가진 부위에 상응하는 곳이었다.
논문의 제1 저자 중 한 명인 MPIMG의 클라우디아 기제케-틸 박사는 "건강한 미감염자의 도움 T세포가, 감기 코로나바이러스에 미리 노출된 덕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에 반응한다는 걸 의미한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신종 코로나에 반응한 미감염자 T세포는 또한 가벼운 감기를 가져오는 여러 종류의 다양한 코로나바이러스에 의해서도 활성화됐다. 이른바 '교차 반응성'을 보여준 것이다.
또 다른 제1 저자인 샤리테 의대의 라이프 에리크 잔더 교수는 "일반적으로 교차반응으로 활성화된 도움 T세포는 코로나19 환자의 항체 형성 속도를 높이는 등 방어 효과를 보일 수 있다"라면서 "이번 실험 사례만 보면, 최근 약하게 감기를 앓은 게 코로나19 감염증을 가볍게 했을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샤리테 의대와 MPIMG 등의 연구진은 이번에 소규모 실험군에서 드러난, 가벼운 감기의 코로나19 완화 효과를 최종적으로 검증하기 위해 전향적 후속 연구에 착수했다.
한편 독일에선 계절 감기 환자의 최대 30%가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인 걸로 알려졌다.
cheon@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