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 친중파에 불리한 구의원 선거 취소 검토"
투표소 시위 벌어질 경우 이를 빌미 삼아 선거 자체 취소 검토
야당 "범민주 진영 선거 승리 우려한 中 중앙정부 음모" 맹비난
(홍콩=연합뉴스) 안승섭 특파원 = 오는 11월 25일 홍콩 구의원 선거를 앞두고 홍콩 정부가 시위를 빌미삼아 친중파에 불리한 이번 선거 자체를 취소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29일 홍콩 명보,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홍콩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은 지난 27일 10여 명의 친중파 의원과 회동해 '범죄인 인도 법안'(송환법) 반대 시위 사태 등을 논의했다.
이 회동에서 친중파 의원들은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구의원 선거 때 시위대가 투표소를 포위하고 시위를 벌일 경우 선거의 공정성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11월 25일 구의원 선거에서는 18개 선거구에서 452명의 구의원을 선출한다.
한 친중파 의원은 "범민주 진영 후보가 불리한 판세인 선거구 투표소에 시위대가 몰려가 시위를 벌일 경우 겁을 집어먹은 유권자들이 투표소에 오지 않을 것이고, 이는 불공정한 선거가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지적에 캐리 람 행정장관은 구의원 선거 자체의 취소가 가능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고 명보는 전했다.
캐리 람 장관은 "홍콩 정부는 선거 연기 등 여러 대응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투표소 시위가 발생한 선거구의 선거를 취소하는 방안, 나아가 전체 구의원 선거를 취소하는 방안 등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전체 구의원 선거를 취소하는 방안의 정당성에 대해 한 친중파 의원은 "투표소 시위가 벌어진 선거구의 선거만 취소할 경우 시위대는 이를 악용해 친중파가 유리한 선거구만 찾아다니면서 시위를 벌일 수 있다"며 "이는 범민주 진영이 구의회를 장악하게 하는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선거 취소 등의 방안은 홍콩 정부 내에서 중국 본토와의 연락 업무 등을 담당하는 정제내지(政制內地) 사무국이 검토하고 있다고 홍콩 언론은 전했다.
홍콩 야당은 이러한 검토가 구의원 선거에서 범민주 진영의 승리를 막기 위한 중국 중앙정부의 음모라고 맹비난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중국 중앙정부는 구의원 선거 결과가 홍콩 통치에 미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며 "범민주 진영이 과반수 의석을 차지할 것을 우려해 이러한 공작을 꾸미고 있다"고 비판했다.
송환법 반대 시위 영향 등으로 11월 구의원 선거는 범민주 진영이 유리하다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홍콩에서 선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로 등록해야 하는데, 올해 유권자로 신규 등록한 사람의 수가 38만6천 명에 달해 전체 유권자 수가 처음으로 400만 명을 넘어 412만 명을 기록했다.
특히 18∼35세 젊은 층 유권자 수가 지난해보다 12% 급증해 친중파 진영을 심판하려는 표심이 발동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홍콩 민주화 시위를 이끄는 조슈아 웡(22) 데모시스토당 비서장도 전날 구의원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범민주 진영이 투표를 방해할 이유가 전혀 없다"며 "정부가 이러한 공작을 꾸미는 것은 범민주 진영이 압도적 승리를 거두는 것을 막기 위한 음모"라고 비난했다.
조슈아 웡은 '사우스 호라이즌 웨스트'(South Horizons West) 선거구에서 현재 구의원을 맡은 친중파 정당 신진당의 주디 찬과 맞붙게 된다.
조슈아 웡은 같은 데모시스토당 당원 아그네스 차우의 전례를 우려해 데모시스토당이 아닌 무소속으로 출마하기로 했다.
지난해 1월 홍콩 선거관리위원회는 데모시스토당의 강령에 포함된 '민주자결'이 홍콩 헌법인 기본법에 규정된 '일국양제'(一國兩制·한 국가 두 체제)에 어긋난다는 점을 들어 아그네스 차우의 피선거권을 박탈했다.
이로 인해 아그네스 차우는 올해 3월 보선에 출마할 수 없었다.
ssa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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