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내 민주·소통 회복해 건강한 교육의 장 만들어야죠"
이달 초 부임한 태백미래학교 강삼영 교장…"공립 전환으로 정상화"
성폭력으로 멍든 학생·교사 자존감 회복 우선…부모 역할도 강조
(태백=연합뉴스) 양지웅 기자 = "사립과 장애, 두 가지 특성이 얽혀 만든 이 학교의 폐쇄성을 해결하는 방법은 소통을 통한 민주주의 회복과 인권 감수성 강화 아닐까요."
지난 7월, 한 교사가 장애학생들을 수년간 성폭행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질타를 받았던 강원 태백미래학교.
해당 교사는 구속되고 사립 학교법인이 공립화의 뜻을 밝히면서 사건은 수습되는 모습이지만, 남아있는 교사와 학생들이 받은 상처는 채 아물지 못하고 있다.
이에 강원도교육청에서 공보관으로 근무하던 강삼영(50) 장학사는 '학교 정상화'라는 과제를 안고 이달 초 태백미래학교 교장으로 부임했다.
강 교장이 처음 학교에 와서 발견한 모습은 '선생님들의 피로'였다.
먼 곳의 학생들을 이른 아침부터 태워 학교로 와 수업을 진행하고, 늦은 저녁까지 기숙시설에서 아이들을 돌보는 생활에 지친 교사들의 얼굴은 그를 안타깝게 만들었다.
그는 "사건이 터진 이후 약 4개월 동안 회식 한 번 못하고, 어디서 미래학교 선생님이라고 떳떳이 얘기도 못 하고 다니던 선생님들을 생각하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와 달리 학생들의 순수한 모습은 강 교장을 미소짓게 했다.
아이들은 "학교 축제에 아이돌 가수를 불러달라", "학교에 댄스 동아리를 만들어달라"는 등 귀여운 부탁과 함께 그를 환대했다.
강 교장이 이곳으로 오기까지는 깊은 고민과 갈등이 있었다.
교사의 성폭력이 언론에 공개될 당시 도교육청의 대변인을 맡았던 그는 사건의 흐름을 가까이서 살피면서 공립화가 문제를 푸는 최선의 방법이라 판단했다.
때마침 해당 학교법인에서도 공립화 의지를 내비치면서 비어있는 교장 자리를 도교육청에서 추천하는 사람으로 채우겠다고 밝혀왔다.
그는 현직 장학관과 교사, 퇴직 교사 등에게 교장직을 권했지만 다들 고사했다.
이에 지난 10월 8일 민병희 도교육감은 그에게 "직접 가서 일을 잘 풀어보라"고 권했다.
주어진 소명을 두고 깊이 고민한 끝에 그는 사표를 던지고 지난달 말 태백으로 향했다.
그는 "젊은 시절 교사생활을 시작했던 동해로 가 올해 다시 교단에 서겠다는 계획은 잠시 접어두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 교장은 1주간 학교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학교 내 민주주의'를 가장 먼저 회복해야 할 과제로 삼았다.
'사립학교'와 '특수학교'라는 두 가지 특징이 얽혀 묘한 폐쇄성을 갖게 된 이곳에서 교사와 직원 사이에 직위를 벗어난 평등한 관계, 서로가 대화를 통해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문화를 뿌리내리는 것이 급선무라 판단했다.
그는 학교 문턱을 낮춰 언론과 사회단체 등이 자유롭게 드나들게 하면서 폐쇄성을 떨쳐낼 생각이다.
강 교장은 이러한 변화들 위에 공립화를 무사히 마쳐 학교 정상화를 이뤄낼 계획이다.
현재 도교육청과 해당 학교법인은 공립화의 뜻을 분명히 하고 절차를 진행 중이다.
먼저 이달 중 법인 이사회에서 학교폐쇄 결정을 내리고 도교육청에 통보하면 법인재산이 자연스럽게 국고로 귀속되면서 태백미래학교는 잠시 문을 닫게 된다.
이후 학교폐쇄와 공립화 전환이 도의회 조례로 통과되면 학교는 정상적으로 내년 3월 초 개학을 맞는다.
공립화라는 시스템 속으로 학교가 들어오게 되면 도교육청이 이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돼 더욱 투명한 운영이 가능해진다.
또 교사 순환 구조가 이뤄져 선생님들이 퇴직 걱정을 덜고 교육에 전념할 수 있게 된다.
강 교장은 "학생과 교사들이 처음에는 이러한 변화에 익숙하지 않을 수 있지만, 결국 공립화를 통한 정상화가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지은 지 40년이 지나 낡은 유치원·초등학교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무허가 기숙시설로 운영되던 생활관을 신축할 계획이다.
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강 교장은 교사들의 뜻을 최대한 존중했다.
그는 "기숙시설도 리모델링을 할 생각이었지만, 교사들이 신축으로 해야 한다고 말했다"며 "지시가 아니라 충분한 대화 끝에 함께 결정하는 모습부터가 학교 민주주의의 회복"이라고 설명했다.
강 교장은 "아이들이 행복 가운데서 삶을 즐기는 것이 최우선"이라며 부모의 역할을 강조했다.
지금껏 학교에 아이를 맡겨두고 교사가 부모의 역할까지 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학교 곳곳에 남아있었다면, 이제 교사와 부모의 역할을 분리해나갈 계획이다.
또 1주에 한 번은 학생이 반드시 집으로 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그는 마지막으로 "학교의 문은 언제든지 활짝 열려있다"며 "많은 사람이 찾아와 교내에 활기가 충만했으면 한다"고 부탁했다.
yangdo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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