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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강릉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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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강릉 정동심곡 바다부채길
뛰어들지 않아도 온몸으로 바다 느낄 수 있는 길

(강릉=연합뉴스) 한미희 기자 = 2천300만 년의 시간이 쌓여 만들어낸 비경은 금단의 구역이었다. 군의 경계근무 정찰길로만 이용되던 정동진의 해안단구 탐방로가 '정동심곡 바다부채길'로 단장하고 일반 탐방객에 공개되고 있다. 바다에 뛰어들지 않아도 온몸으로 바다를 느낄 수 있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이다.



서울 광화문에서 정동 쪽에 있다는 뜻이 이름에 담긴 강릉의 정동진.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동진의 명물은 아무래도 정동진역이다. 1995년 당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여주인공 윤혜린(고현정 분)이 홀로 찾은 이후 정동진역은 인적 드문 간이역에서 강릉 최고의 관광지가 됐다.
정동진역에서 남쪽으로 정동진 해변과 모래시계 공원, 정동 포구를 지나 내려오면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에서 깊은 계곡 마을 심곡항까지 이어지는 해안 탐방로 '정동심곡 바다부채길'이 이제 그 명성을 잇고 있다. 특히 지난해 12월 서울에서 강릉까지 고속철도(KTX)가 개통되면서 이곳을 찾는 이도 폭발적으로 늘었다.
이곳 해안은 일반인에게 곁을 내주지 않는 곳이었다. 여전히 군의 경계근무가 이뤄지는 이곳은 건국 이래 단 한 번도 일반인에게 개방된 적이 없다 한다. 2천300만 년 전인 신생대 제3기 말∼제4기 초에 일어난 지반 융기작용으로 해안단구가 형성된 이후 태고의 비밀과 아름다움을 간직해 왔다.



국내에서 가장 긴 해안단구로 천연기념물로도 지정돼 있다. 앞서 개발된 강릉 지역 트레킹 코스인 바우길과 동해안을 잇는 해파랑길도 이곳을 비켜갔다.
바다부채길은 2년에 걸친 국방부와의 협의와 문화재청의 허가 과정 끝에 2016년 10월 임시 개통했다. 임시 개통 기간에만 50만 명이 다녀갔다. 지난해 3∼5월에는 낙석방지망 공사를 위해 통제하고 화장실, 주차장 등 편의시설을 보강한 뒤 2017년 6월 유료로 정식 개장했다.
총 길이 2.86㎞로 여유 있게 걸어도 한 시간 남짓이면 충분한 길지 않은 코스다. 정동 매표소와 심곡 매표소 양쪽에서 입장할 수 있다.
심곡에서 출발하면 우측통행인 탐방로에서 바다와 한 발 더 가까운 이점이 있지만, 마지막에 출구인 정동 매표소로 올라가는 300여 개의 가파른 계단이 기다리고 있으므로 노약자나 어린이가 동행한다면 정동에서 내려가는 게 좋다.



◇ 발 아래 부서지는 파도

정동 매표소로 입장하면 먼저 계단으로 절벽을 내려가야 한다. 소나무 숲 사이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오는 사람들이 헉헉거리거나 앓는 소리를 낸다.
몽돌이 깔린 바닷가에 다다르면 옛 순찰로가 먼저 나타난다. 뾰족한 가시가 박힌 철조망이 칭칭 감긴 철책을 따라 걷는다. 탐방로로 올라서면 본격적으로 바다와 만나는 길이다.
파도는 바로 옆에서 부서지기도 하고 발아래까지 밀려 들어오기도 한다. 지형과 주변 바위의 크기, 자리 잡은 위치, 바다의 깊이와 골을 이루고 있는 모양에 따라 파도가 밀려와 부딪히고 부서지는 모양과 소리도 다르다.



파도가 센 곳에서는 철써덕 하는 소리가 귀와 머리에 가득 차 울린다. 철제 다리가 꽤 높은 곳에서는 살짝 두려운 마음마저 들 정도로 아찔하다. 검푸르거나 투명한 에메랄드빛 바닷물과 하얀 포말이 마구 뒤섞인다.
육지 쪽으로 깊숙이 들어와 작은 만을 이루는 곳은 언제 그랬냐는 듯 파도도 잦아든다. 잔잔한 물결과 투명한 바닷물 아래로 바닥이 내려다보이고, 파도 대신 물결을 따라 자갈 구르는 소리가 들린다.
언제나 바다를 그리워하고 바다를 보면 설레지만, 정작 바다를 앞에 두고도 선뜻 뛰어들지 못하는 혹은 뛰어들지 않는 사람에게는 바다를 가장 가까이에서, 온몸으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 수천만 년의 시간을 드러낸 곳

오른쪽의 해안단구 절벽으로 눈을 돌리면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해풍을 맞으며 자란 소나무들이 절경이다. 절벽에서 바다로 떨어져 나온 바위들은 흙이 쌓여 지반을 이루고, 솟아오르고, 파도에 깎이는 수천만 년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자연이 만들고 깎아낸 바위에 이야기를 붙이는 건 사람의 몫.
투구를 쓴 장수의 모습과 닮은 투구바위를 보며 강감찬 장군의 설화를 이야기한다. 그 옛날 발가락이 6개인 육발호랑이가 밤재길을 넘어가는 사람 앞에 스님 모습으로 나타나 내기 바둑을 두고 이기면 사람들을 잡아먹었다 한다.



강릉에 부임한 강감찬이 이 이야기를 듣고 밤재에 가서 부적을 써 붙이니(편지를 보냈다고도 한다) 육발호랑이가 백두산으로 도망을 갔다는 이야기다.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경계 초소는 물론, 새로 만든 탐방로 옆에 녹슨 옛 순찰로와 철조망, 눈앞을 가로지르는 통신 케이블, 사진촬영이나 무단출입을 금지하는 경고문들은 여전히 이곳이 군의 경계근무가 이뤄지는 지역이라는 점을 떠올리게 한다. 아무나 접근할 수 없는 '금단의 구역'에 들어와 있다는 사실이 짜릿한 기분을 더해주는 듯했다.
빗금을 쳐 놓은 듯 사선으로 기울어져 박혀 있는 기암괴석과 시시각각 달라지는 초록빛 바다와 파도 소리를 즐기며 슬렁슬렁 걷다가 잠시 벤치에 앉았다. 바다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맞으며 발가락을 까닥거린다. 발가락 사이가 간지럽고 시원하니 콧노래도 흥얼거린다.



지나가던 탐방객이 손바닥에 간식을 덜어주신다. 간식을 먹고 힘을 내 손을 털고 일어서 다시 걷다 보니 미끄럼이라도 타고 싶게 매끈한 경사면이 있는 커다란 바위가 나타난다.
부채를 펼쳐 놓은 모양을 닮아 부채 바위다. 탐방로의 이름에도 기여한 그 바위다. 바위를 삥 둘러 이어놓은 길을 따라 바다 쪽으로 더 나가면 전망대가 있다. 정면으로는 망망대해와 하늘이, 양옆으로는 지나온 길과 이제 가야 할 길이 보인다.
바위를 돌아 나오면 이제 길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리 높지 않은 계단을 오르면 멀리 방파제 끝에 빨간 등대가 보인다. 길의 끝인 심곡항이다. 계속 보면서 지나온 바다와 바위와 파도와 절벽과 소나무가 여전히 이어지지만, 질리지도 않는다. 심곡전망타워에서 질리지도 않는 것들을 마지막으로 눈에 담고 내려온다.
해안단구 절벽 아래 바다를 메워 만든 헌화로 드라이브는 이 길의 완벽한 마무리가 된다. 걸어서 갈 수 있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에서 차로 갈 수 있는 바다와 가장 가까운 길이 이어진다.



◇ INFORMATION

한여름에 뛰어들 수 없는 바다가 그림의 떡처럼 아쉬운 사람도 있겠다. 실제 한여름에 탐방객이 가장 적은 편이라고 한다. 가림막이 있는 벤치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 나무 그늘 하나 없는 땡볕이라 아예 자리 잡고 쉴만한 곳은 마땅치 않다. KTX 개통 이후 평일에도 3천 명, 주말에는 7천 명까지 몰려드는 번잡함을 피하고 싶다면 오히려 나쁘지 않을 수 있다. 오전 9시 입장시간에 맞춰 가거나, 해가 절벽 뒤로 넘어가는 오후 2시 이후라면 뜨거운 한낮의 태양을 피해 여유 있게 즐길 수 있다. 봄과 가을, 맑고 파도가 치는 날이 가장 좋다고 한다. 겨울의 파도도 운치 있지만, 그 파도가 너무 심하면 폐장하기도 한다.

- 하절기(4∼9월) 오후 5시 30분, 동절기(10∼3월)는 오후 4시 30분까지 운영한다. 마감 한 시간 전까지 입장할 수 있다.
- 정동과 심곡 양쪽 매표소 인근에 무료 주차장이 있다. 정동에는 버스 주차장 세 곳과 승용차 주차장 1곳이, 심곡에는 승용차 주차장 2곳이 있다. 정동 매표소가 있는 썬크루즈 리조트 주차장도 이용할 수 있는데, 주말과 공휴일에는 유료다. 두 매표소를 오가는 순환버스도 주말과 공휴일에만 유료로 운행한다.
- 탐방로 안에는 화장실이 없다. 매표소 인근 화장실을 미리 이용하는 것이 좋다. 평탄한 길이지만 철망으로 된 구간이 많으므로 굽이 있는 신발은 위험할 수 있다.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8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mihee@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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