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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① 유레일 티켓 들고 떠난 유럽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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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① 유레일 티켓 들고 떠난 유럽 여행

(루체른=연합뉴스) 임동근 기자 = 동화처럼 예쁜 풍경을 감상하고 중세로 시간 여행을 하는 여정이었다. 스위스~이탈리아 구간을 운행하는 열차 밖으로 쉼 없이 펼쳐지는 눈부신 풍경이 차창을 가득 채웠다. 열차가 지나는 도시들은 저마다의 매력으로 여행자의 오감을 자극했다. 지난 4월 유레일 한국홍보사무소 협찬으로 두 나라 네 개 도시를 돌아봤다.

◇ 루체른, 낭만 가득한 호반 도시

누구나 인정하는 스위스의 첫인상은 깨끗함이다. 청정한 산과 호수, 초원은 눈을 말끔하게 씻어주고, 투명한 공기는 폐부 깊숙한 곳까지 정화한다. 루체른은 스위스의 청정함을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사위가 어둑한 평일 이른 아침 루체른의 풍경은 조금 분주했다. 도로에서는 자동차와 버스, 트램이 앞다퉈 지나고 말쑥한 차림의 사람들은 바쁘게 발걸음을 옮겼다. 루체른의 아침은 여느 도시처럼 그렇게 부산스러웠다. 루체른 호수 너머로 태양이 높이 떠오르자 인구 8만여 명의 도시는 더 북적거렸다. 이번엔 관광객 때문이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이 관광 명소는 물론 거리와 기차역, 선착장을 빽빽하게 메웠다. 지난밤 취리히공항에서 열차로 1시간 12분 만에 도착해 만났던 고요하고 평화로운 루체른은 사라지고 없었다.
호수를 마주하는 루체른 문화센터에서 도보 관광을 시작했다. 루체른 문화센터는 1938년부터 시작한 유서 깊은 고전음악 축제인 '루체른 페스티벌'이 열리는 곳. 매년 세계적인 클래식 뮤지션들이 아름다운 선율을 선사한다. 문화센터 앞으로는 호수가 아침 햇살에 은빛으로 반짝인다. 호수에는 스위스 깃발을 단 유람선이 지나고, 하얀 백조는 물 위에 떠다니며 우아함을 뽐낸다. 흰 눈 덮인 봉우리들이 푸른 호수를 두른 풍광에 숨이 멎을 듯하다. 체스넛트리가 도열한 호숫가에서는 사람들이 그림엽서 같은 풍경을 배경으로 여유를 즐긴다.
호숫가를 벗어나 골목길로 들어서면 두 개의 고딕양식 첨탑이 하늘로 치솟은 호프교회가 나타난다. 교회 안에는 4천950개의 파이프로 만든, 스위스 최고의 음색을 자랑한다는 파이프오르간이 설치돼 있다.



◇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

호프교회 인근 작은 공원에는 세계적인 기념물로 꼽히는 '빈사(瀕死)의 사자상'이 있다. '빈사'는 거의 죽게 된 상태를 뜻한다. 둥그런 초록 빛깔 연못 뒤로 거대한 회색의 암벽 가운데 움푹 팬 곳에 수사자 한 마리가 죽어간다. 이 부조는 프랑스혁명 때 루이 16세를 지키다 전사한 스위스 용병 786명을 기리기 위해 1821년에 만든 것이다. 사자 머리맡에 열십자가 새겨진 스위스 용병의 방패가 놓여 있고, 앞발 아래에는 부르봉 왕가의 문장인 백합이 새겨진 방패가 보인다. 등에는 살갗을 깊이 파고든 부러진 창이 꽂혀 있다. 고통이 가득한 사자의 표정은 보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할 정도로 사실적이다. 소설가 마크 트웨인은 "세계에서 가장 슬프고도 감동적인 바위"라고 묘사하기도 했다.



공원 뒤편으로 상업지대와 주택가를 지나 비탈을 오르면 무제크 성벽이 도로를 비스듬히 가로지른다. 14세기 루체른을 방어하기 위해 마을을 둘러 축조한 도시성벽으로 지금은 약 900m만 남았다. 성벽을 따라 난 계단을 오른 후 망루를 통해 성벽에 오르자 눈부신 푸른 하늘 아래 갈색 지붕이 빽빽한 도심과 초록빛 호수, 멀리 눈 덮인 필라투스(해발 2,132m)의 웅장한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무제크 성벽에서 10분 정도 걸어 내려가면 구시가다. 이곳 광장과 골목에 있는 건물에는 프레스코 기법으로 채색된 화려한 그림들이 그려져 있다. 기독교 성경 속 가나의 혼인 잔치, 에덴동산에 있는 선악과나무를 감싸고 오르는 뱀, 중세의 기사 등 다양한 그림이 눈길을 끈다. 광장에는 기사의 조각이 새겨진 음수대도 있다. 루체른에는 이런 음수대가 220개나 있다고 한다.
구시가를 벗어나 로이스 강변으로 내려서면 루체른의 랜드마크인 카펠교가 모습을 드러낸다. 성벽의 일부로 지어진 길이 200m의 카펠교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다리다. 들보에는 스위스와 루체른의 역사, 도시 수호성인의 일대기를 담은 그림 110점이 걸려 있다. 카펠교는 어둠이 내린 후 가장 멋지다. 불 밝힌 다리가 수면에 반사돼 영롱한 분위기를 전한다. 강변 노천 주점의 탁자 하나를 잡고 앉아 맥주를 들이켜면 낭만은 배가 된다.



◇ 발아래 펼쳐지는 초록빛 세상

루체른 주변으로는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1,797m), '악마의 산'이란 별칭의 필라투스(2,132m), 스위스 중부에서 가장 높은 티틀리스(3,239m) 등이 포진해 있다. 이 중 리기는 루체른을 방문한 관광객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다.
루체른 역에서 기차로 30분 거리에 있는 아르트-골다우 역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리기산으로 가는 3개의 관문 중 하나. 두 량짜리 하늘색 산악열차에 오르면 얼마 후 기차가 서서히 비탈을 오른다. 커다란 차창 밖으로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민들레꽃이 초록빛 들판을 노랗게 뒤덮은 목가적인 풍경이 스쳐 지난다. 고도가 높아지면서 창밖은 듬성듬성 눈이 덮인 산악 풍경으로 바뀐다. 멀리 흰 눈을 머리에 이고 있는 알프스의 봉우리들도 보인다.



산악열차는 리기의 마지막 역인 해발 1천750m의 리기쿨룸 역에서 멈춘다. 기차를 나서면 차가운 기운이 옷 속으로 파고든다. 불과 1시간여 전 반소매를 입을 정도였던 루체른 시내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기차역 뒤편 언덕을 오르자 멀리 설산이 웅장함을 뽐내고, 반대편으로는 초록빛 들판, 진초록 숲, 맑은 호수가 발아래 펼쳐진다.
도보 15분 거리에 있는 한 정거장 아래 역인 리기 슈타펠까지 걸어 내려가는 것도 좋다. 내리막길을 천천히 걸으며 맑은 공기와 아름다운 주변 풍광을 만끽할 수 있다. 열차를 기다리는 동안 리기 슈타펠에 있는 카페테리아에서 커피나 맥주를 마시면서 설산을 감상하는 기분이 꽤 좋다.



[취재협조] Luzern Tourismus AG-Tourist Board(www.luzern.com)

※ 연합뉴스가 발행하는 월간 '연합이매진' 2018년 6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dklim@yna.co.kr
(끝)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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