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시론] 쉽지 않은 '비정규직 문제' 너무 서두르지 말기를
(서울=연합뉴스) '간접고용'이 많은 사업장으로 유명했던 인천국제공항공사가 새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에 맞춰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좋은일자리창출 TF'로 이름을 붙이고 그 아래 '정규직 전환반'과 '일자리 창출반'을 두었다고 한다. 하지만 당장의 관심은 비정규직 문제에 쏠려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2일 공항공사를 방문해 "임기 안에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시대를 열겠다"고 말했다. 이 자리에서 정일영 공사 사장은 올해 말까지 협력사 직원 전체를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이틀 만에 TF를 가동했으니 일사천리라는 말이 나올 만하다.
문 대통령이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는 사업장으로 인천공항공사를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다. 인천국제공항을 운영하는 이 공사는 대표적인 간접고용 사업장으로 꼽힌다. 세계공항서비스 평가에서 12년 연속 1위에 올랐지만 그 배경에는 10명 중 8명이 넘는 비정규직의 희생이 숨겨져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실제로 이 회사의 직접고용 인력은 1천99명으로 16%에 불과하고 나머지 6천831 명이 간접고용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공사 사장이 '연내 완전 해결'을 약속할 만큼 문제가 간단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정부 산하 공기업이 상습적으로 비정규직 인력을 착취해왔음을 실토한 것과 무엇이 다를까 싶다. 정 사장은 "법률·노동전문가로 외부자문위와 컨설팅단을 구성하고 노조와도 적극 협의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새 정부 출범에 즈음해 비정규직 시범사업장으로 떠오른 공항공사가 앞으로 어떤 해법을 내놓을지 주목된다.
비정규직 문제는 한마디로 고질적인 난제다. 올해 3월 말 현재 정부 산하 공공 및 부설 기관 355곳에 종사하는 비정규직은 14만4천여 명으로 전체의 33.6%를 차지한다. 공공기관 4곳 중 1곳은 비정규직 비율이 50%를 넘는다는 통계도 있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고용의 경직성과 인건비 부담을 꼽을 수 있다. 하지만 인건비 부담 때문에 비정규직을 많이 쓴다는 것은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지난해 비정규직 평균 임금은 정규직의 54%에 불과했다. 낮은 비정규직 임금의 반대편에 높은 정규직 임금이 버티고 있는 구조다. 지난해 35개 공기업의 평균 연봉(7천905만 원)은 국내 300대 대기업 평균(7천400만 원)보다 높았다. 독과점 분야에서 손쉽게 이익을 내는 공기업들이 임금마저 이렇게 많이 주니 '신의 직장'이라는 비아냥을 듣는 것이다. 그러면서 직원의 3분의 1을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채워 왔다니 부끄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공공부문 정규직의 임금체계에 손을 대지 않고는 비정규직 문제를 풀기 어려운 이유도 여기에 있다.
공공부문은 그래도 정부의 손안에 있지만 더 큰 문제는 민간 부문이다. 공공부문이 선도해 민간 부문에 자극을 주는 정도로는 별다른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문 대통령이 공약한 비정규직 차별금지법이나 비정규직 고용 부담금 제도도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것 같지는 않다. 대표적 강성 '귀족노조'인 기아차 노조는 지난달 사내 비정규직 노조와 결별했다. 민간 사업장의 비정규직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비정규직 문제의 기저에는 심각한 임금 양극화 현상이 깔려 있다. 2015년 현재 대기업 정규직을 100이라고 할 때 대기업 비정규직 62, 중기 정규직 52, 중기 비정규직 35의 구조다. 현실적으로 상향 평준화가 어렵다면 결국 상대적 고임금 노동자가 일부라도 기득권을 양보하는 것 외에 달리 마땅한 방법이 없다. 그러나 대기업 노조가 주도하는 노동계를 설득해 양보를 끌어내는 것은 쉽지 않다. 국민의 뇌리에는 수없이 반복된 노사정 협의체의 실패 경험이 생생하다. 정부가 출범 초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바로잡고자 나선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하지만 인내심을 갖고 차분히 풀어가는 것이 좋다. 너무 서두르면 오히려 일을 망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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